새 경제팀이 24일 제시한 경제정책방향은 한마디로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드는 한국 경제를 살리고자 재정과 세제, 금융 등 당국의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재정·금융 등을 묶은 41조원의 거시정책 패키지를 내놓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한국 경제에 군불을 지피겠다는 것이다.
 기업 소득을 가계 소득으로 환류시키고 비정규직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지속 가능한 성장에도 무게를 실었다.
 다만,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금융을 통한 지원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 “경기회복 의문…일본식 불황 우려”
 이번 경제정책 방향은 한국 경제의 경기 회복세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면서 나왔다.
 고질적인 내수 부진에 세월호 참사가 겹친 데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미진하면서 수출까지 둔화하자 경기 회복세 지속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과 역동성이 너무 떨어져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정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할 경우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저물가,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 등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1%대 저물가가 지속하면서 경상성장률이 빠르게 둔화하고 기업 수익성이 저하되면서 고용과 임금, 가처분 소득이 둔화하는 등 민생경제 회복을 막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1%에서 3.7%로 0.4%포인트 내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에서 1.8%로 낮추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는 3.4%에서 5.0%로 올렸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올해 2.0%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봤다.
 
 ◇ 41조원 투입…재정 12조원, 금융·외환 29조원
 정부는 기존 정책을 뛰어넘는 과감하고 직접적인 정책 대응 필요성을 제기했다. 소극적 거시정책이 성장 둔화로 이어져 다시 세수 감소로 연결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새 경제팀의 정책목표는 내수 활성화다. 이를 위해 거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고 주택시장을 살리며, 기업의 소득을 가계로 환류시키는 대책을 제시했다.
 정부는 우선 41조원 상당의 재정·금융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재정 보강 규모는 11조7천억원으로 추경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정책금융을 확대하고 외국환평형기금의 외화대출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29조원 이상의 금융·외환 지원책을 마련했다.
 지역·업권별로 차등화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는 LTV 70%, DTI 60%로 단일화하기로 했다.
 부동산 시장을 지렛대 삼아 내수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규제 개혁 성과를 가시화한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선도 사례로 건축규제를 든 점도 부동산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가늠케 한다.
 
 ◇ 기업소득→가계소득…세제로 지속성장 유도
 기업의 성과를 가계 소득으로 환류시키는 과정에서 세제 등을 통해 강제력을 행사하기로 한 것은 새 경제팀이 1기 경제팀과 다른 모습이다.
 기업의 성과가 일자리로 이어지고 다시 가계의 소득으로 연결되는 전통적 경제 정책의 한계를 느낀 정부가 과도한 현금성 유보 자산에 대해 과세로 방침을 전환한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성장 모델에 분배 측면을 좀 더 가미한 방식이다.
 정부는 기업이 앞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일정 수준 이상 근로자의 임금이나 투자 등 재원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추가 과세하는 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임금 상승률이 최근 3년 평균 상승률 이상으로 높아지면 상승률 초과분의 10%를 세액에서 공제해주는 가계소득확대세제도 내놨다.
 기업의 배당을 촉진하고 고령층의 저축에 이자소득 비과세 한도를 늘리는 등 세제 지원책도 제시했다.
 근로소득 증대 세제와 기업소득 환류 세제, 배당소득 증대 세제 등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를 마련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 위축을 막고자 체크카드·현금영수증 소득공제를 한시적으로 확대하고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은 2년 추가 연장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처럼 강력한 정책이 성공하면 올해 성장률을 0.1∼0.2%포인트, 내년 성장률을 0.3%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 전문가 “금융 비중 너무 높아…기준금리 낮춰야”
 새 경제팀이 과감한 접근법을 제시했지만 41조원이라는 숫자에 허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41조원 안팎의 이번 대책에서 금융·외환 지원책은 29조원 이상을 차지한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금융 지원은 추가경정예산처럼 돈을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라면서 “자금이 실제 대출로 연결될지 미지수이고 다른 곳에서 빌리려 했던 자금을 정책금융으로 조달한다면 순수하게 투자가 늘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기금과 정책금융기관 등 정부 통제하에 있는 경로에서 더 많은 돈을 투입하는 것이 내수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는다”면서 “증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행과 공동 인식에 기초한 정책조합이 필요하다”면서 “과감한 재정확대와 기준금리 인하가 병행돼야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살아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수익을 가계로 환류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과세나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데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사내유보금 과세로 투자를 유도하고 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지게 하는 정책을 취하겠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옳다고 생각한다”면서 “시장에서 낙수효과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조세 정책으로 재분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기업의 인건비 상향 유도는 자칫하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억압하고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획일적인 임금 인상 유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직원의 임금 격차만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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