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재생사업으로 도시가 되살아나다

허름한 와인창고 있던 마을 보존해
동화마을로 변모시키며 관광지화
폐선 아치형 고가철도 재개발 않고
예술가 작업실·녹지공간으로 꾸며
화재로 뼈대만 남은 곡물창고는
호텔·유스호스텔로 새롭게 태어나

파리는 낡은 도시가 아니라 오래된 도시다. 그러면서도 자유와 낭만이 있는, 누구나 한번쯤 다녀가고 싶은 도시다.

웅장함을 자랑하는 에펠탑이나 예술가의 아지트 몽마르트 언덕, 쇼핑의 대명사 샹젤리제 거리 등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파리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발굴해내고 있다. 대부분 개발을 통한게 아니라 재생사업을 통해 도시가 되살아난 것이다. 지역별 특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을 계속해서 찾아내는 파리의 사례를 소개한다.

◇허름한 와인창고가 동화마을로 대변신

파리 베르시 빌라주는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 기차에 실려와 내려지는 종착역이자 인구가 집중된 파리 시민들에게 공급할 와인을 보관하는 창고 밀집지역이었다. 1770년대부터 포도나무를 키우고 포도주를 만들던 농부들까지 이곳으로 옮겨와 집과 창고를 지으면서 남프랑스 분위기를 내는 파리의 한 마을로 자리잡았다. 

▲ 예술의 다리로 불리는 비아딕 데 자르의 상단 녹지공간. 과거 철로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드리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베르시 주변지역에 대한 개발이 진행되면서 와인창고 지역 지가가 덩달아 상승했다. 땅을 임대해 창고를 운영하던 와인 보관업자들은 높은 보증금에 못이겨 하나둘씩 베르시를 떠나게 됐고, 와인을 실어나르던 기차 운행도 중단되면서 1980년대 와인창고로써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미 주변이 개발됐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철길을 경계로 좌우 일렬로 줄지어선 와인창고를 싹 허물고 고층 건물을 지었겠지만 파리시는 다른 선택을 했다. 과거 포도주를 운반하고 저장했던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게 재생사업이었다.  

▲ 비아딕 데 자르. 폐선된 철로 하단을 예술인 작업장 등으로, 상단을 공원으로 꾸며 관광지로 거듭났다.

200여년을 훌쩍 넘긴 단층 건물을 그대로 두는 대신 좌우로 늘어선 창고 뒤편에 2층 건물을 다시 세웠다. 철길에선 새로 지은 2층 건물이 보이지 않도록 설계했다. 철길은 그대로 두고 철로 끝부분에 와인을 저장하는 오크통 하나를 세워 과거 와인창고였음을 상기시켜줬다.

옛 창고에는 음식점과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잡화점, 유명 의류 점포 등이 들어섰다. 지금은 파리의 동화마을로 불리면서 관광객들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고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옛 유물을 승계·발전시키는 파리

예술의 다리로 불리는 비아딕 데 자르(Le Viaduc des Arts)가 파리 프롬나드 플랑테 아래에 위치한 철로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 구간은 1853년부터 바스띠유 광장에서 뱅센느를 잇는 대표적인 철로였지만 1970년대 폐선됐다. 

▲ 허름한 와인창고에서 동화마을로 대변신에 성공한 파리 베르시 빌라주.
 

당시 파리시는 4.5㎞ 상당의 철길을 완전히 철거하는 대규모 재개발 공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파리는 보존을 결정했다. 붉은색 벽돌이 쌓인 아치형 고가철도 아래 공간 60여곳을 실내공간으로 꾸며 소규모 가구공방이나 수제작 소품가게, 공방 등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채웠고, 최근에는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입점해 젊은 층이 많이 찾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기차가 다니던 철길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녹지공간으로 꾸며졌다. 재생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라빌레뜨 항구에 자리잡은 건물 ‘마가장 제네로’도 눈길을 끈다. 178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200년간 전국 각지에서 실려온 곡물이나 자재를 보관하는 창고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창고로써의 기능을 잃고, 1980년대 후반에는 화재로 창고 하나가 철골 뼈대만 남기고 전소됐다. 파리시는 주민공청회 등을 통해 보존을 택했다. 2003년 최종 설계안이 나왔고, 2008년 완공됐는데, 불에 탔던 창고는 옛 외형을 그대로 유지한채 절반이 호텔, 절반이 유스호스텔로 거듭났다. 옆 창고는 대학교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 리모델링된 창고 건물 앞에는 극장가 등이, 뒤에는 라빌레뜨과학관 등이 들어서면서 또다른 명소로 자리잡았다.

글=이왕수기자·사진=김동수기자

인터뷰/ 파리서 활동하는 건축가 임우진
“철저히 도시의 특성 살리는 파리의 재개발·보존 사업”

프랑스 파리에서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임우진(사진) 건축가는 라빌레뜨 운하의 적재장 유적 재개발(Magasins generaux) 등 현지 중요 설계에 참여했다. 파리에서 16년째 건축·설계업에 종사하는 그는 “파리는 개발·보존 등의 사업을 진행할 때 철저하게 도시의 특성을 살린다”고 말했다. 별다른 특색 없이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한국과 달리 파리는 지역별 정체성을 살려 부흥을 꿈꾼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베르시나 예술의 다리 등이 관광지로 탄생하게 된 배경은.

“파리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도시를 계획한다. 오랜 시간동안 주민 공감대를 얻고 전문가 자문 등을 거치면서 건축가, 주민, 관광객 모두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관광지를 만들어냈다.”

­사업성만을 고려했다면 철거후 대대적인 개발이 바람직했을텐데.

“한국은 오래된 아파트나 노후 주택지역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를 세운다. 기존 지역이나 주민 고유의 특성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면 또 고층 아파트를 허물고 더 높은 아파트를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꿈꾼다. 50년, 100년 뒤를 내다보며 지역 특성을 이어가길 바란다.”

­파리 재생사업에서 중요한 힌트를 발견하자면.

“한국에서는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고가도로를 아무런 고민없이 철거한다. 하지만 파리는 예술의 다리 사례처럼 보존을 우선으로 추진하고 불가능할 경우에 철거를 한다. 무조건 없애고 새로 짓는 것도 좋지만 상징성을 부여해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이어가는 것을 바람직하게 본다. 향후 이 차별성이 명품도시의 중요한 엔진이 될것이다.” 이왕수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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