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르헨티나의 유명 컨설팅 회사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내년 대규모 위기를 예상했다.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치안 불안, 지도층 부패 문제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까지 겹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2001∼2002년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1천억 달러의 채무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2005년과 2010년에 채권자들과 협상에서 채무의 92.4%를 달러당 25∼29센트 수준으로 깎는 헤어컷(손실 상각)에 합의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아르헨티나는 이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정부(2003∼2007년)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내수소비 증가 등에 힘입어 비교적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집권한 후로는 국내외 여건의 변화로 아르헨티나가 세계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주력 산업이 흔들렸고, 국내적으로는 실업률 상승과 빈곤층 증가로 소비자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소비가 극도로 위축됐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등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나타내면서 ‘기술적 침체’ 상태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에 상황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지난해부터 물가 급등과 재정 적자 확대, 환율 불안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인플레율은 민간과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면서 신뢰를 잃었고 조작 의혹까지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경제통계를 바로잡으라고 요구했고, 이를 무시하자 지난해 아르헨티나에 ‘불신임’(censure) 결정을 내리고 차관 제공 거부를 시사했다. 외환위기를 우려한 아르헨티나는 결국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 통계기준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고, 올해 1월부터 이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재정 적자 규모는 2012년과 비교해 80%가량 증가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110% 이상 떨어졌다. 재정 적자 확대와 페소화 가치 하락은 인플레율 상승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그런데도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정부 개입 확대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인플레율 억제를 위해 가격동결이라는 고강도 처방을 사용했고, 외화유출을 막는다며 수입장벽을 갈수록 높였다.
 가격동결은 인플레 억제 효과를 일부 냈으나 경제를 얼어붙게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월 초 194개 생필품의 판매가격을 동결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그래도 인플레율 상승 압력이 계속되자 가격동결 품목을 302개로 늘렸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서 경기는 침체 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업이 생산을 의도적으로 줄이면서 정부 의도와 달리 오히려 인플레를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
 그러는 동안 아르헨티나 경제의 생산성은 빠르게 추락했다.
 지난 3월 정부 조사에서 아르헨티나의 생산공장 가동률은 7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생산공장 가운데 3분의 1이 사실상 가동 중단 상태라는 뜻이다. 이는 2001∼2002년 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2003년 이래 가장 낮은 것이다.
 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수입장벽을 계속 높이는 바람에 때문에 생산원료까지 수입규제에 묶였다. 이는 가격동결 조치와 함께 기업의 생산활동을 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르헨티나의 외화보유액은 현재 300억 달러를 밑돈다. 2006년 11월 이래 가장 적다.
 외화보유액은 2011년 1월 526억5천4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이래 감소세가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외화보유액이 올해 연말 24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고, 내년에는 200억 달러 선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스페인 다국적 에너지회사 렙솔의 자회사인 YPF를 국유화하는 대가로 65억 달러의 국채를 발행하고, 무리하게 파리클럽과 97억 달러의 채무상환에 합의한 것은 외환위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재계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자제하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거시정책을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미 연임에 성공해 차기 대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내외 위기 요인이 겹치면서 아르헨티나는 중남미 3위 경제국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IMF는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GDP)이 내년 중 콜롬비아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봤다.
 IMF 자료를 기준으로 아르헨티나의 GDP는 올해 4천45억 달러에서 내년에는 3천788억 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콜롬비아의 GDP는 올해 3천877억 달러에서 내년엔 4천96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콜롬비아는 예측 가능한 정책과 인프라 투자 확대 등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에 성공하면서 지속성장 기반을 쌓아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정부 정책의 잇따른 실패로 2001∼2002년 위기의 여파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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