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끝서 선바위 가는 길 무성한 숲이 등산객 반겨
작은 장구산 정자서 땀 식힌 뒤 다시 큰 장구산으로
묘지 많아 이름 붙은 ‘묘지길’ 안내판에 눈길 멈춰
과수원-임도 지나면 태화강 물소리에 더위가 ‘싹’

▲ 작은 장구산에 오르면 발아래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공사현장과 무거동, 굴화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작은 장구산에는 아름다운 정자도 만들어져 있어 쉬어가기 좋다.
무더운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느껴지고 마음도 차분해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물놀이를 접고 이제는 조용한 길을 혼자 걷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서울 면적의 1.8배나 되는 울산은 산도 많고 길도 많지만 도심 근교의 길을 꼽으라면 몇 안된다. 그 중에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길은 또 그리 많지 않다. 베리끝에서 선바위까지 가는 길은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속세를 벗어난 길이다. 조용히 길을 걷노라면 어떻게 이렇게 속세를 피해서 길이 잘 나 있는지 신기한 느낌이 든다.

베리끝 전설이 주렁주렁 달린 베리끝 길을 걸으면 태화강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섬들과 그 사이로 노니는 팔뚝만한 물고기들, 그리고 제멋대로 자란 수초들…. 벼랑 아래로 난 길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보여주며 늦 여름의 정취를 한 껏 끌어 올린다. 

▲ 베리끝 길은 태화강을 따라 이어지는데, 중간 쯤에는 대숲 속을 통과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시작하는 길목은 베리끝 길을 따라 가다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교량 아래를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이다. 울창한 대숲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입구에 사냥개를 풀어놓았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심술궂은 팻말이 있으나 이 길은 원래 등산로이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가에 무덤이 수없이 나타나는데, 이 구간이 ‘묘지길’이다. 중구청이 묘지길 팻말을 세워놓았다.

등산로로 접어들면 처음부터 호젓한 산길이 마치 에스컬레이터처럼 등산객을 실어날라 준다. 땡볕을 가려주는 무성한 숲 속으로 난 길은 도심의 혼잡한 세상을 금방 잊게 해 준다. 한 20분 정도 가다 보면 하늘이 나타나고 작은 장구산 정상에 도착한다. 장구산은 작은 장구산과 큰 장구산으로 나뉘는데, 작은 장구산에서 내리막으로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가면 큰 장구산이다. 작은 작구산 정상에 오르면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공사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무거동과 굴화의 풍경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작은 장구산에 만들어져 있는 정자는 쉬어가기에 좋다. 사방으로 거칠 것 없는 풍경에 솔바람이 쉼없이 불어온다. 시간만 된다면 누워서 낮잠이라도 자고 가고 싶다.

작은 장구산에서 큰 장구산을 거쳐 계속 나아가면 다운동에서 시작되는 주 능선과 만나게 된다. 주 능선은 큰 오르내림 없이 편편하게 이어져 산책하듯 걸으면 된다. 걷다 보면 울산시 중구청에서 만든 안내팻말이 하나 나오는데 그 길 이름이 ‘묘지길’이다. ‘걷고 싶은 중구 둘레길’ 가운데 묘지가 가장 많아 성묘객과 등산객들이 붙인 이름이란다. 릉과 원, 묘, 총, 고분 등의 개념을 설명해 놓은 문구들이 지나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 등산로는 능선을 따라 호젓하게 나 있다. 솔바람을 즐기면서 산책하듯 걷다 보면 어느새 선바위까지 가게 된다.

길은 구영­서사간 도로를 가로질러 계속 이어진다. 과수원이 나오고 임도가 나오고 갈래길이 나오지만 호젓한 풍경은 변함이 없다. 허고개 방향으로 나아가던 길은 과수원을 지나면서 유(U)턴을 해 선바위 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몇번 반복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타나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망성마을로 가게 된다. 직진하면 선바위의 뒤쪽 선암사로 이어진다.

선암사로 가기 전에 선바위의 푸른 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백룡담이라고 불리는 이 소를 지나면 선바위 위에 전설같이 얹혀있는 누각이 있다. 이 정자가 용암정(龍岩亭)이다. 조선 정조때 울산부사로 부임한 이정인(李廷仁·1796~1801)이 현재의 용암정 자리에 정자를 지어 입암정(立岩亭

 

)이라 이름짓고 거기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후 학성 이씨 송옹공(松翁公) 이원담(李元聃·1683~1762)의 후손이 이 곳에 현재의 용암정을 지었다. 용암정 앞에는 조계종 소속의 선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베리리끝에서 선암사까지 가는 길은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속세를 만나지 않는 길이다. 베리끝의 전설과 장구를 닮은 장구산, 죽은 자들의 길인 묘지길, 그리고 세상과 인연을 끊은 채 초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선암사, 선바위 꼭대기에 서 있는 용암정,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된다.

길은 출발지점에서 끝까지 계속 전진하면 된다. 중간에 갈림길이 있긴 하나 ‘선바위’ 방면을 가리키는 팻말을 따라가면 된다. 문수고등학교에서 출발해 이 구간을 완전히 걸으면 약 10㎞ 정도 된다. 시간은 넉넉잡아 4시간 정도. 글·사진=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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