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중시했던 신라가 결국 삼국통일”
김복순 동국대 국사학과 교수

▲ 15일 CK 아트홀에서 열린 경상일보 제4기 비즈니스컬처스쿨에서 동국대 국사학과 김복순 교수가 ‘경주 유적 내의 신라’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경상일보가 마련하는 명품특강 비즈니스컬처스쿨(BCS) 제4기 12번째 강연이 15일 오후 7시 CK아트홀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에서는 동국대 국사학과 김복순 교수가 ‘경주 유적 내의 신라(新羅)’를 주제로 신라의 어원 및 흥망성쇠에 관해 100여분 간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 교수는 신라문화에 대해 “고조선에서 비롯된 우리 민족의 문화가 삼한, 삼국을 거쳐 최초로 단일문화로 융섭하여 발전하는 계기를 형성한 문화”라며 “삼국 가운데 인재 양성에 가장 열의를 쏟았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는 교훈은 분단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적지않는 교훈을 남긴다”고 말했다.

‘신라’(新羅)를 일컫는 옛 기록은 사로(斯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나벌(徐那伐)·서야(徐耶)·서야벌(徐耶伐)·서라(徐羅)·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 등 다양하다. 이는 모두 새로운 나라, 동방의 나라, 성스러운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 뜻이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 지증왕 편에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의 신(新)과 그 뜻이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의 라(羅)가 합쳐지면서, 이전부터 사용되던 ‘신라’가 국호로 최종 확정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현재 경주시 등이 경주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해 추진하는 ‘신라 왕경(王京) 복원사업’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왕경은 신라 수도 서라벌의 중심지였다. 경주시는 오는 2025년까지 황룡사와 월성(왕궁) 등 주요 유적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 교수는 또 지난 7월 시진핑의 서울대 강연에서 언급된 최치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치원은 868년(신라 경문왕 8년)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당나라의 빈공과(외국인 자격으로 보는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한 인물이다. 하지만 29세에 고향에 돌아온 그는 학식과 경륜을 펼쳐보려 했으나 신분제의 높은 장벽에 그만 좌절했다. 지방 호족세력의 발호와 진골 귀족의 부패를 막기 위한 ‘시무10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렸지만 결국 은둔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 등을 통해 그 일부가 전해지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언급하며 “풍류도라는 신라 고유의 가르침이 있어 화랑도는 그 가르침을 받들어 수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만약 전문이 보존되었다면 신라의 화랑도와 9세기 말엽 신라의 사회상을 보다 극명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치원은 우리 문화의 원형을 한문으로 기록한 최초의 인물이나 마찬가지”라며 “중국의 명인 반열에 오른 고대 신라인 최치원에게서 첨단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복순 교수는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신라 지식인들의 서역인식>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저서로는 <신라불교와 왕권> <한국금석문집성>등이 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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