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읍 대곡리의 사연호 끝머리에 반구대라는 명소가 있다. 층을 이루고 있는 바위의생긴 모양이 거북이가 걸어나오는 것 같아 반구대라 불린다. 선사시대 선인들이 넓적한 바위에 새긴 그림들이 남겨져 있는 놓은 곳이다.  고려말 정몽주가 언양현의 요도에서 귀양살이하면서 이곳을 찾은바 있어 선생의 호를 따서 "포은대"라고도 부른다. 조선조 이언적도 이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도 하였다. 천전리로부터 흘러오는 맑은 물이 쉴새없이 반구대를 스쳐 사연제(泗淵堤)에 흘러든다. 30m가 넘는 반구산의 벼랑은 3층대를 이루는 기암이다.  조선 숙종 임진년(1712)에 반계서원을 이곳에 세우고 위 세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내다가 고종 때에 이르러 전국의 서원이 폐지되자 경자년(1900)에 세 선생의 유허비와 비각을 세워 후세에 그 뜻을 전하고 있다.  이곳 반구대에서 약 2km정도 하류로 강을 따라 내려가면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나타난다. 1971년 12월에 세상에 알려졌으니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대곡리암각화는 기원전 10세기 내지 7~8세기 이후 청동기시대 문화유산으로 동해바다 고래잡이와 태화강변의 구릉과 숲에서 사냥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여기 새겨진 약 225점의 형상 가운데 사슴, 멧돼지, 거북이, 호랑이 등의 육지동물과 사냥장면, 배, 그물, 울타리 등 수렵장면과 어로장면이 있는데, 고래를 잡으려는 사람들, 새끼 밴 고래, 물을 뿜는 고래 등 무려 60여 마리의 고래가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태화강을 중심으로 한 울산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기지이자 동시에 또 선사시대의 한반도에서 산업이 가장 발전된 지역 가운데 하나였음에 틀림없으며 이 그림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고래는 대곡리 선사인(先史人)들에게 풍부한 고기와 질 좋은 기름, 그리고 수염이나 뼈 등을 사람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반구대 진입로 개설을 두고 행정당국과 지역주민,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나 이들 모두 반구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은 같으리라 생각한다.  암각화의 주인공은 동물들이다. 동물들은 본능적이기는 하나 그들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간다. 독선과 이기심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악을 거침없이 자행하며 질서를 파괴하는 인간들과 어찌 비할까.  반구대 진입로는 한적한 시골 논밭길이 계속되다가 불현듯 속세를 등진 별세계로 풍경이 돌변하여 신비의 태고적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강길부 전건설교통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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