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거리서 20년간 생활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

법원, 1500만원 첫 배상 판결…다른 암은 기각

같은 암 투병 기장주민 41명 유사소송 이어질듯

법원이 울산 울주군과 인접한 고리원전 근처에 사는 주민에게 발병한 갑상선암에 대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전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원전 방사능이 인체에 해가 없는 수준이라고 홍보했던 정부 주장을 뒤엎는 것이어서 유사소송 등 파장이 예상된다.

부산지방법원은 원전 인근에 사는 이진섭(48)·이균도(22)씨 부자와 아내 박모(48)씨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박씨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박씨 가족은 지난 2012년 7월 “고리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으로 가족 3명이 암과 장애에 걸렸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갑상선암이 발병한 박씨는 원전 6기가 있는 기장군의 고리원전에서부터 7.6㎞가량 떨어진 곳에서 20년 가량 살면서 고리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수원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고리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량이 원자력안전법에 규정한 연간 유효선량한도(0.25mSv~1mSv·밀리시버트)에 미치지 못하는 등 이유가 있지만 방사선 연간 유효선량은 국민 건강의 최소한도 기준이며 국민의 건강은 재산상 이익보다 중요하고 공공의 필요에 의해 희생되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갑상선암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방사선 노출로 알려져 있고, 2011년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이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 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에서 원자력 발전소와 거리가 멀수록 갑상선 암 발생률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원전 주변 5㎞ 이내 여성 주민은 30㎞ 이내 여성보다 갑상선암 발병률이 1.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재판부는 갑상선암 이외 암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박씨와 달리 함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이씨와 아들은 각각 직장암과 발달장애를 안고 있지만 재판부는 이들이 가진 질병과 방사선 방출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진섭 씨는 “원전 인근 주민의 질병에 대해 한수원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데 의미가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아 항소하고 다른 피해 주민의 소송을 돕겠다”고 말했다.

원전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생에 대해 원전 운영사에 책임을 물은 이번 판결로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만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기장군 주민만 이번에 일부 승소한 박씨를 포함해 41명으로 나타나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수원 측은 곧바로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수원 관계자는 “갑상선암은 최근 검사기술 발달로 전국적으로 급격히 증가한 암이며 해당 주민의 방사선 피폭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다. 최근 서울대의 관련 역학조사 결과에서도 방사능과 암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며 “세부적인 사항을 검토한 뒤 항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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