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여인천하"의 여인들 지혜가 천하를 제패했다. 여인들의 계략과 술수가 곳곳에서 넘쳐난다. 난정이 윤원형을 신방에까지 이르게 하는 지혜는 차라리 신랑 되기를 포기했으면 하는 정도였건만 "엄동설하의 천리길이라 해도 님을 향해서라면"라는 남정네들의 본능적 속성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이었다. 경빈과 문정왕후와 난정이 "회임과 석고대죄" 등을 통해 벌리는 접전은 가히 조조와 제갈량의 계책들이지 않는가.  여인들이 이다지도 고수들이니 남자들은 거의 멍청이 표로 캐릭터화 되어 버리고 만다. 귀속으로 파고드는 "뭬야?"라는 경빈의 쟁쟁거리는 호통에 온통 주눅들뿐이다. 당연히, 여인들의 지혜는 남성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출중한 여성과 여성들 사이의 혈전에서 빛을 발한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지혜를 부릴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웃기는 일이 된다.  그러나, "여인천하"에서 여인들이 지혜를 발하며 멋들어지게 두길잡이의 한판을 벌리고 있지만 그건 드라마에서나 그렇고 남성들의 지혜가 이제껏 과욕하고 무분별했듯이 여성들 지혜 또한 남성들의 존재와 어울려 안방 수준을 넘지 못했던 게현실이었다. 여인들의 출중한 지혜가 제 방향을 잃고 야릇하고 잡스럽게(는실난실) 비비적거리고 있음이다.  최근 일본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한 연구소에서 "여성의 여성 공포증"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남성이 대체로 지위나 경제력 같은 비교적 명확한 척도로 서로 경쟁하는 것과 달리 여성은 외관을 중심으로 허울뿐인 애매한 경쟁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얼굴이나 옷, 몸매 등으로 경쟁하는 사이에 여성으로서의동지애나 친밀감을 잃어버리고 여성을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배척해 버리는 또는 무서워하는 상태에 이르게된다는 분석이다. 결국 여성들의 지혜를 그들의 안방 문지방조차도 넘지 못한 형편없는 수준으로 정리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성차별화하는 남성우월주의는 21세기 들어 좌우 양손에 십자가 못이박혔고 이제 발바닥에 위치한 못으로 망치가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이래서 인류의 소망은 여성이 인류의 중심에 반듯하게 서서 전체적인 발전을 이룩해 주기를 기대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컨대 여성의 지혜가 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중심축이 되어야한다는 말이 되겠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등 모성보호에 관련된 구법 개정 서명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21세기는 여성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라며 "모성3법 개정이 가정과 사회 양쪽을 조화롭게 하는 동시에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게 여성들이 협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성3법의 발전적인 개정은 우리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왔던 여성들의 지혜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구조적 적소(structual niche)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여성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이 정도로 깨쳐서 펼쳐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천하"의 드라마에서와 같이 출중한 여인들의 세계가 도래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성급함은 물론 금물이다. 여성의 지혜는 아직도안방 문지방의 턱조차도 넘고 있지 못하지 않는가. 안방에서 넓디넓은 대청마루로의 진출에는 여성들 스스로가 깊게 성찰하고자하는 자세가 최소한의 전제조건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다 남성도 적잖게 자기 희생을 감당해야 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  시급한 것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푸근히 기대고 싶으면서도 박차고 떠나고 싶어하는양가감정(ambivalence)을 쓰레기 통속으로 버리는 일이다. 그리된다면 남성과 여성이"동등한 지위에서의 접촉(equal-status contact)"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수많은 까탈들이 "발보다 발바닥 큰 시비"를 걸 것이고, 성차별의 꼴통 마초들이 "가까운 제 눈썹은 못 보는 머리통"을 들이댈 것이다. 그렇지만 난정과 문정왕후가틀어쥐려는 여인천하가 손에 잡힐 듯 바로 저기 다가오고 있는데 걸음을 예서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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