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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법원칼럼
[법원칼럼]바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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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30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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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병석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A판사가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몸이 무거웠다. 새벽에 잠들 때까지 다음 주 선고예정인 B피고인에 대한 양형 때문에 뒤척인 탓이다. B피고인은 불법오락실 운영 혐의로 기소되었다. 위반의 정도나 오락실의 규모, 운영기간, 수익의 정도 등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B피고인은 이른바 ‘바지사장’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데 있었다. 스스로 친척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여 이름을 빌려주었노라고 변소하는데 일부 증거들과도 부합하는 면이 있어서 단순 변명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바지사장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이름만 빌려준 사장이다. 문서 상의 외관과 실제가 다른 경우인데, 지인들의 부탁 때문에 또는 적은 대가에 이끌려 이름을 빌려 주는 경우가 꽤 있는 터이다. ‘결과반가치’적 측면에서 보면 가벌성이 작다할 수 없지만 ‘행위반가치’적 측면에서 보면 엄벌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고민인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빌려 주는 ‘명의대여’가 형사재판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민사소송에서도 등기명의나 계좌명의를 빌려줘 문제되는 사건은 부지기수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의대여가 잦은 것은 ‘의리(義理)’와 ‘정의(情誼)’를 중시하는 국민성 때문인가라는 생각조차 들기도 한다.

A판사는 이런 유형의 사건에 대해 동료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를 보는 판사들의 시각이 갈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순화해서 보자면 이런 거다. 어떤 판사들은 문서의 증거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이에 반하는 증인의 증언 등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판사들은 문서 상의 기재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구체적 사정들을 미시적으로 살핀다. 간접정황들에 부합하는 증언 등이 있는 경우 자주 서증과 다른 사실관계를 인정하기도 한다.

A판사는 문득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 이론’이 떠올랐다. 경제학의 기대효용(Expected Utility) 원리가 최근 범죄학에 도입되어 고안된 개념으로 사람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결정을 하는 것처럼 범죄자 역시 어떠한 범죄를 실행하기 전에 그로 인하여 얻는 이익과 손실을 계량하여 실행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이 그만큼 합리적인지, 범죄자들이 손실계량 후 범죄를 실행하는지 의구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위에 대한 불이익이 크다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시사점은 있어 보인다.

A판사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도 생각해 보았다. 최근 거래비용을 분석하면서 신뢰비용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신뢰 조사비용, 불이행 회피비용, 처리비용 등을 줄일 수 있어 전체적으로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면의 신뢰도는 거래신뢰의 출발점이다. 복잡한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문서상 기재가 사실에 부합할 가능성이 많고 그에 기초한 사실관계가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다면 거래가 훨씬 원활하고 비용이 줄 것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바지사장이든 명의대여든 바람직한 사회현상은 아니고 본인들도 이름을 빌려 줄 때는 각오한 것이 있을 것이고 다시 이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나 거래 시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외관을 중시하는 판단을 하는 것이 ‘정의(正義)’에 부합하는 거야. A판사는 결심한 듯 침대를 빠져나오려다 곧 멈칫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 꿈틀대던 ‘사법은 구체적 사건에서의 구체적 타당성의 추구인데 과연 사법정책적 이유로 행위책임을 넘어 제재하거나 개개인의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완전히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A판사는 심호흡을 한 후 자리를 박찼다. 어찌 되었든 오늘 점심때까지는 결론을 내리라 다짐하면서.

소병석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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