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초대받지 못한 잔치, 우리끼리라도 벌여보자는 심정이었을까.

가을 야구에 나가지 못한 프로야구 하위팀들이 벌이던 ‘그들만의 포스트시즌’ 대활극이 ‘십이야’ 만에 일단락됐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종운 1군 주루코치를 신임 감독에 선임한다고 31일 밝혔다.

지난 19일 KIA 타이거즈의 선동열 감독 재계약 발표 이후 촉발된 하위권 팀 사령탑 이슈가 열이틀 만에야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KIA는 당시 올 시즌 8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에도 선 전 감독을 재신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폭격을 맞았다.

결국 엿새 만인 지난 25일 선 전 감독이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히고 사흘 뒤 김기태 신임 감독이 부임하고서야 KIA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최하위 한화 이글스는 활극의 중간 부분 주인공이 됐다.

프로답지 않은 플레이에도 응원을 보내며 ‘보살’ 소리까지 듣는 한화 팬들이 서울 종로구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면서 김성근 감독을 모셔오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이어갔다.

애초 김성근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한화지만 팬들의 간절한 성원을 외면할 수는 없었고, 결국 지난 25일 제10대 사령탑으로 김 감독을 선임했다.

김기태 감독과 김성근 감독 선임에는 여론의 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프로야구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추세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 점 때문에라도 KIA와 한화는 상위 4개 팀의 포스트시즌 경기가 벌어지는 기간에 감독과 관련된 이슈를 터뜨려 잔치판에 훼방을 놓는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KIA, 한화, 이들을 흘겨보던 모든 이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활극의 클라이맥스는 롯데가 따로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27일 한 스포츠 매체가 ‘롯데 선수단이 공필성 코치의 감독 선임을 반대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고, 그날 오후 선수단 주장 박준서가 ‘우리는 그런 적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롯데 담당기자들에게 발송했다.

어디로 튈지 몰라 긴장감을 자아내던 ‘롯데만의 가을 야구’는 다음날 새벽 선수단이 ‘문자 메시지는 구단 프런트의 협박과 회유에 의한 것이었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문제의 원흉으로 구단의 한 직원 실명이 거론됐고, 이 직원은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롯데 구단이 소통 강화와 재발 방지 등을 약속하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갈등, 불신, 혼란의 거대한 화염에 물 한 동이를 끼얹는 격이었다.

이날 이종운 감독 선임 발표로 롯데를 둘러싼 여러 불확실성 가운데 한 가지 요소는 제거됐다.

그러나 롯데 선수단-구단-프런트-코칭스태프가 서로 충돌한 갈등의 근본 구조는 여전하기에 다른 팀들과 달리 감독 선임은 문제 해결의 작은 부분일 뿐 완결일 수가 없다.

따라서 갈기갈기 찢긴 팀 내부 봉합은 여전히 프런트를 필두로 한 구성원들에게 남겨진 미해결 과제다.

올 시즌 가장 야구를 못한 7∼9위 팀들의 자중지란을 보면서 조용히 웃은 팀들도 있다.

5위 SK 와이번스와 6위 두산 베어스다.

두산은 지난해 포스트시즌 준우승 감독인 김진욱 전 감독을 내치고 송일수 감독을 데려왔지만 시즌 내내 지도력 논란에 시달리고 성적도 신통치않자 결국 지난 21일 김태형 신임 감독을 선임했다.

송 전 감독과 그를 데려온 두산 프런트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가 커져만 가던 와중에 더 아래에 있는 팀들이 더 시끄러운 소동을 일으켜준 덕에 두산은 옛 감독의 해임과 새 감독의 선임 과정을 비교적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었다.

SK 역시 김용희 신임 감독 체제를 이렇다 할 이슈 없이 안정적으로 출범시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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