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제조업의 보편적 생산방식
속단 말고, 법원 최종판단 기다려야

▲ 김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

50년 전인 1964년 출범한 울산상공회의소는 현재 2300개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울산의 대표적인 경제단체다. 울산시민이 일하는 회원사 하나 하나는 규모에 관계없이 지역경제의 주역들이다. 필자는 책무 중의 하나가 회원사 대표들과 늘 만나는 것인지라, 그 분들과의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경제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하늘이 늘 맑을 수 없듯이 경제 역시 자연현상과 같아 흐렸다 갰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경제수도’로 불릴 정도로 우리 울산은 자동차 등 3대 주력산업이 포진하고 있어 울산경제는 곧 한국경제의 핵심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회원사 경영진을 만날 때마다 공통된 걱정거리를 얘기한다. 통상임금 확대 적용 여부와 흔히 비정규직으로 칭하는 사내하청이 그것이다. 특히 지난달 18~19일 서울중앙지법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가 제기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 대해 판결한 이후 기업인들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차의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의 요지는 쉽게 말해 ‘같은 담장 안에서 일을 하면 모두가 그 회사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대차 직영근로자들과 함께 직접 차를 만드는 공정에서 일하든,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곳에서 지원을 하든 사내하도급 근로자까지 모두 현대차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백 개 협력업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자동차산업 특성상 원활한 부품공급을 위해 협력사가 자기들 필요에 의해 자사 제품을 조립, 납품하도록 한 인력까지, 단지 현대차 공장 내 소재지를 둔다는 이유로 현대차 정규직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이유는 현대차가 노무지휘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겨울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경제 환경에 신속히 적응하기 위해 운용하는 사내하도급의 직원을 자사정규직으로 받아들이라고 할 경우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사내하도급은 기업의 인건비 절약 목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고임금 사회가 낳은 결과물의 하나다. 이는 저임금 시기였던 지난 60~70년대에는 요즘처럼 사내하도급을 쓰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는 것만 봐도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한편, 이번 판결 후 현대차 현장관리자를 비롯한 정규직 직원들도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내하도급 근로자들과 함께 일하는 그들은 누구보다 현장상황을 잘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엄연히 다른 회사에 소속돼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노무지휘를 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이는 현실과 동 떨어지는 판결이라고 지적하면서 “현장이 혼돈 속에 빠졌다”고 한다.

이번 판결은 1개 기업차원을 넘어 제조업도시 울산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이다. 사내하도급은 고용경직적 법제하에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현행법상 제조업의 경우 엄격한 정리해고 요건에 더해 직접 생산공정의 근로자 파견불가로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인력운영의 유연성 결여와 불법파견을 인정받으려는 소송 및 노동계 투쟁의 확산, 무엇보다 하도급 관련 노동비용 급증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위축이 우려된다.

따라서 사내하도급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제조업에서 시장의 수요 불확실성을 보완하기 위한 보편적 생산방식이기에 이번 1심판결이 향후 항소를 통해 명확한 기준이 확립될 때까지 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사내하도급을 포함한 유사 현안이 법적 분쟁으로 확대, 노사갈등 및 혼란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정부는 적극적 정책방향 설정으로 위법의사가 전혀 없는 기업이 정상적 경영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선제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차단하기 위한 정책 법제도상 미비점 보완 개선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 관한 판결에 항소를 한 것은 한 번 더 법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뜻일 것이다. 3심제도가 있으므로 1심 판결이 나기 바쁘게 “즉각 시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체제의 근간을 존중하지 않는 매우 안타까운 발상일 것이다.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라 법이 현실 문제를 다루는 고도의 수단이라면 더욱 그렇다.

김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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