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나폴리’ 통영을 가다

▲ 미륵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려수도의 수려한 경관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눈부신 태양이 은빛 비늘을 일으키고 발 딛은 미륵산의 암봉에는 마침내 솜털을 날리기 시작한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지난주 토요일과 일요일인 15일과 16일 통영에서 이틀을 보냈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은 지금 가을을 떠나 보내기가 아쉬워 북쪽에서 달려온 관광객과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다. 미륵산은 단풍이 한창 물들어 있고, 강구안의 중앙시장에는 펄떡펄떡 뛰는 가을 생선들이 미식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울산에서 2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통영, 통영은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자연경관과 사람들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여행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훌륭한 경치는 한번 보고 나면 싫증이 나기 마련이지만 통영은 볼수록 체험할수록 그 맛이 깊어지고 새롭다. 그런 통영에는 지금 북방의 겨울이 밀고 내려와 붉은 가을과 대치하고 있다.

■ 미식가 자극하는 곳
신선함이 펄떡이는 강구안
꿀빵·충무김밥 등 먹거리 풍성

■ 한폭의 그림같은 곳
다도해 품은 절경에 우뚝 선 미륵산
동피랑 골목마다 형형색색의 벽화
수많은 예술가들 기념관도 볼거리

■ 역사가 스며있는 곳
강구안 포구에 거북선·판옥선 정박

한국 해양문화의 산실 세병관·12공방

◇‘통영’의 출발, 삼도수군통제영 

▲ 미륵산 정상 전망대에서 케이블카로 가는 데크길.

통영의 옛 이름은 두룡포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선조 37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삼도수준통제영)이 이 곳에 생겨 비로소 통영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본격적인 삼도수군통제영은 이 때 생겼지만 실질적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라고 할 수 있다. 

▲ 강구안 포구에 떠 있는 거북선.

통영은 주된 항구인 강구안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문화·예술·역사가 집중돼 있다. 강구안에서 세병관 방면을 바라보면 여황산이 강구안 포구를 빙 둘러 감싸고 있다. 강구안에서 여황산까지, 그리고 여황산에서 좌우의 작은 봉우리까지 이어지는 구역이 통영의 과거 중심지였다. 이 구간에는 1678년(숙종4년) 통영성(統營城)이 축조됐는데 지금도 동피랑 벽화마을 꼭대기에 올라보면 영성(營城)의 동쪽 누각인 동포루(東砲樓)와 석벽이 일부 복원돼 있다.

◇한국의 100대 명산 미륵산 

▲ 미륵산 초입의 관음사.

미륵산(461m)은 강구안에서 바라다 보이는 미륵도의 중심 산이다. 장차 미륵불이 강림할 것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미륵산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어 단시간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400m 정도 데크길을 걸어 오르면 정상에 도달하는데 여기서는 통영항과 한려수도의 다도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벌였던 바다의 전장이 발아래 내려다 보여 이순진 장군이 어떻게 학익진을 펼치며 왜군을 물리쳤는지 상상할 수 있다. 

▲ 각종 군수품을 제작하던 12공방.

미륵산은 직접 걸어 오르는 재미도 솔솔하다. 용화사 앞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관음사, 도솔암 등을 거쳐 정상으로 올랐다가 케이블카 방면을 거쳐 용화사로 원점회귀하면 된다. 지금 관음사와 도솔암 인근에는 단풍이 한창이고 절집 마당의 동백나무에는 때아니게 동백꽃이 만발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조용한 산사에 가을 빛이 고요히 내려앉아 선경을 연출한다.

◇강구안, 그리고 동피랑 

▲ 미륵산에 오르다 만나는 도솔암.

강구안은 통영 여행의 포인트다. 포구에는 영화 ‘명량’에서 적함을 온몸으로 부딪혀 침몰시켰던 거북선과 판옥선 4척이 띄워져 있는데, 최근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주말마다 크게 붐비고 있다. 특히 강구안 문화마당을 돌아가는 도로는 충무김밥집과 최근 명물로 떠오른 꿀빵집이 늘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강구안 거리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은 중앙시장 횟집골목. 방금 들어온 해산물을 장만하면서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불러대는 아주머니들의 걸쭉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이 골목에는 초장집 가격이 1인당 3000원밖에 하지 않고 횟값도 울산 보다 훨씬 저렴해 밤낮으로 사람들이 밀려든다. 

▲ 강구안 앞 도로에 늘어선 충무김밥집들.

중앙시장 횟집골목 옆으로 올라가는 동피랑 벽화마을도 마찬가지다. 하루 한번 오르내리기도 힘든 달동네가 벽화가 그려지면서 일약 전국적인 명물로 탈바꿈했다. 70년대식 슬라브집 지붕에 만들어진 카페와 2~3평 남짓한 마당의 커피숍 등 동화같은 풍경이 강구안의 반짝이는 포구와 어울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이다. 동피랑에 가면 울산의 신화마을이 생각나지만 어쩐지 무리한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

◇세병관 그리고 12공방 

▲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꿀빵가게.

세병관(국보 제305호)은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통제영을 이 곳으로 옮겨 온 이듬해인 1604년에 처음 세웠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축물이다. 국보 가운데 유일하게 신발을 벗고 올라가 누워볼 수 있는 건물이다.

세병관을 지나 왼쪽 담장을 지나면 12공방들이 자리하고 있다.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에서 비롯됐는데,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각종 군수품을 직접 제작하기 위해 관급 장인들을 기용했다. 이 장인들이 만든 여러가지 물품 가운데 12가지가 상업적 공방으로 발전하고 급기야 통영의 명물로 등장하게 됐다. 세병관 옆 12공방 구역에는 공방별로 건물이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는 12가지 물품을 제작하는 장면이 입체적으로 구성돼 있다. 12공방은 통영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통영의 예술

▲ 산정상 동피랑 벽화마을 옥상에 만들어진 카페.
강구안과 미륵도 일대에는 미술·문학 등 예술인들의 기념관 등이 즐비해 있다. 전혁림 미술관, 김춘수 유품전시관, 윤이상 기념관, 청마문학관, 박경리 기념관·묘소 등과 함께 이순신 공원, 달아공원, 남망산조각공원, 수산과학관 등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여기다 소매물도, 사량도, 욕지도, 연화도, 한산도, 장사도 등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섬들이 통영 근처에 있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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