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연령대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가 그들을 노인이라 볼 수 있는 나이라고 가늠한다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생각을 좀 바꾸어야겠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서글프고 힘빠지는 일 중의 하나는 나이를 먹어 간다는 사실일 것이다. 결혼해서 애 낳은지 한참 되는 여자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아직 미혼이시죠?’하는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아줌마’라고 불리워졌을 때를 기억한다. 산부인과에 분만하러 갔을 때 간호사가‘아줌마 이리로 따라 오세요’하는데‘아니 저 사람은 누구보고 아줌마래?’하고 상당히 괘심해 했다. 이제는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넘어가는 것에 대비해 나는 수시로 지금 몇 살이니까 나이에 맞게 옷을 입고 말씨와 몸가짐에 조심해야 돼 하고 다짐하지만 자칫 20대 때의 응석과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오해 받을때가 가끔 있다. 그때는 어떤 것이고 가능했었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맘 먹고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는 세계가 늘 있었다.

 이제는 요만한 집에 정해진 직업으로 그저 건강하게 자식 잘 커가는 소망 외에 내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없다. 예전의 고향, 공부했던 곳, 조그만 추억이 있었던 곳에 가 보면 다 그대로 변함없이 잘 있는데 나만 늙어버렸다. 이런 이유로 나 보다 젊은 사람들은 나를 공경해야 하고 날 잘 대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경과 존경 같은 것은 상대가 해 주는 것이지 내가 원한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유교의 영향으로 아직 우리 젊은이들은 다른 어떤 나라의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을 공경하고 예의 바르다. 버스나 전차를 타면 연세 드신 분이나 애기를 안고 있는 아줌마들에게 얼른 자리를 양보해 준다. 외국 관광객들은 이런 우리네 모습에 놀란다.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이런 광경을 보기는 힘들다.

 이웃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그런데 가끔 눈시울을 찌푸리게 하는 노인들이 있다. 급하게 버스에 올라 타자 말자 빈자리를 찾다가 자리가 없으면 젊은 사람 앞에 가서‘어서 일어나 뭐하고 있어’하는 표정으로 몸을 이쪽으로 반은 기대어 서 있다. 물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에는 젖먹이 아이부터 남자, 여자, 신체 장애자, 노인들이 어우러져 더불어 살고 있다. 다들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나는 너보다 늙었으므로 자리를 비키라고 할 수는 도저히 없다. 상대가 나를 위해 주었을 때 우리는 기꺼이 받아 들일 수 있고 고마워 할 수는 있지만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말씨가 거칠어지고 거리낌없이 내 뱉을 때가 수시로 있다. 우리 노인들의 목소리를 좀 줄여야겠다. 관광버스에서 큰 목소리로 세상 끝난 듯이 춤추고 노래하는 행동을 자제해야 되겠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 보면 엄연히 횡단보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낮이고 밤이고 상관 없이 아무 곳에서나 천연덕스럽게 길을 건너는 노인들이 있다. 건너는 그 곳이 이미 횡단보도이다. ‘나는 배운 것이 없는 무식꾼이므로 아무 것도 모른다’는 식의 사고(思考)는 안 된다.

 무식과 유식의 차이는 학력의 차이가 아니라 배우고저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박사까지 공부한 사람이 자기 것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결코 유식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되며 배우고 깨달아 가야 한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노인들의 역할이 요구되는 사회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건강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많다. 일거리를 찾아 이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야 되겠다.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어른들이 참으로 많이 계신다. 아! 저런 분은 더 이상 늙지 말고 그대로 있어 주었으면 하는 분들이 실로 많다. 그 분들의 풍부했던 삶의 경험담은 책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이 사회는 그런 노인선생님들의 건전한 활약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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