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의 끝자락인 26일 선암호수공원은 마지막 잎새들이 흩날려 붉은 융단처럼 길을 덮고 있다. 길도, 산도, 나무도, 사람도 붉은 색으로 변했다. 이번 주가 지나고 나면 낙엽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겨울의 혹한을 견뎌낼 것이다. 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낙엽을 긁어모아도 북풍이 싸늘한 망각의 어둠속으로 몰아가 버리네. 추억과 회한도 저 낙엽과 같은 것…’ 이브몽탕의 샹송 ‘고엽’의 일부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겨울 초입, 어딘가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구 송정 박상진호수공원에는 이 맘때가 되면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붉은 산이 호수에 투명하게 비치고 호젓한 산책로에는 낙엽들이 양탄자처럼 쌓였다. 호수와 낙엽과 길이 함께 하는 곳, 울산의 대표적인 호수공원 3곳을 추천한다.

◇송정 박상진 호수공원
청송 주산지 부럽잖은 만추의 풍광 자랑
울산서 가장 조용하고 맑은 호수로 손꼽혀
 

 

박상진 호수공원은 옛날 송정저수지를 말한다. 북구청이 저수지에 공원화사업을 벌이면서 송정저수지는 환골탈태했다. 소먹이던 아이들이 여름날 멱감고 놀고 가던 한낱 저수지가 울산의 대표적인 힐링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최근에는 박상진 호수공원의 빼어난 경관이 점차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울산에서는 가장 조용하고 맑은 호수공원으로 꼽힌다.

산책길은 호수공원 둑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된다. 도둑골 방면으로 난 데크로드는 발 밑까지 찰랑대는 물소리와 함께 산 허리를 돌아 꼬불꼬불 나아간다. 왼쪽은 울창한 수목이 소리없이 낙엽을 떨어뜨리고 오른쪽은 맑은 호수가 푸른 하늘과 붉은 산빛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다.

박상진 호수공원은 사계절 아름답지 않은 때가 없다. 봄에는 진달래와 산벚꽃이 어우러지고 여름에는 물안개 자욱한 산 속의 피서지가 되며, 겨울에는 눈덮인 산천과 호수가 그림같은 설국을 만들어낸다. 지금 박상진 호수공원은 청송 주산지가 부럽지 않은 만추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데크로드는 도둑골로 갈라지는 지점을 통과해 고헌정(古軒亭)으로 이어진다. 고헌(古軒)은 울산 송정동 출신 독립투사 박상진의 호. 박상진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에 발령받았으나 사퇴하고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내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고헌정은 데크로드에서 호수 중앙 쪽으로 다리를 놓아 만든 정자로, 사방으로 보이는 경치가 가히 경이롭다.

데크로드를 따라 깊숙하게 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로물정원’이 나온다. 물 속에 뿌리를 박고 자란 나무들 사이로 데크를 설치해 길을 미로처럼 연결해 놓은 곳인데, 벤치도 곳곳에 있어 만추의 낙엽을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다.

돌아나오는 반환지점은 미로물정원으로 해도 좋고, 그 위쪽의 피크닉장으로 해도 좋다. 돌아나오는 반대쪽 길에는 벽면에 고헌 박상진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려놓아 흥미를 더한다.

◇선암호수공원
선암댐, 2007년 시민들 휴식공간으로 재탄생
탐방로·축구장·꽃단지·미니종교시설 등 갖춰
 

 

선암호수공원은 일제강점기 때 농사를 목적으로 선암제(仙岩堤)라는 못(淵)이 만들어진 곳이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후에는 울산·온산공업단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선암댐이 조성됐다. 이후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위해 철조망을 철거하고 생태호수공원을 조성, 2007년 1월에 개장했다.

박상진호수공원이 자연 속의 조용한 힐링공간이라면 선암호수공원은 아기자기하고 볼 것도 많은 도심 속 산책공간이다. 지압보도, 데크광장, 탐방로, 장미터널, 야생화단지, 꽃단지, 생태습지원, 연꽃군락지 등 많은 시설이 조성돼 있으며, 인조잔디축구장, 우레탄족구장, 서바이벌게임장, 모험시설, 피크닉잔디광장까지 갖춰져 있다.

입구에서 장미터널 방면으로 길을 따라 가면 계절이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고 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바람에 날린 낙엽들이 호수로 떨어져 물결따라 흘러가니 행운유수 같은 세월의 무상함이 쌀쌀한 공기와 함께 피부에 와 닿는다.

길은 폭신한 흙길과 데크로드로 번갈아 이어진다. 호수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수변식물들 사이로 데크로드가 꼬불꼬불 나 있어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이어 산 허리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이 곳을 오르면 ‘안민사’라는 절과 ‘성베드로 기도방’, ‘호수교회’가 실제보다는 작지만 사람들이 들어갈 정도로 만들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숲 속에서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면 만추의 서정이 더욱 깊어진다.

◇명덕호수공원
호숫가에 굽어 자란 낙락장송들 장관
해맞이교·달맞이교·아한정도 볼거리
 

 
선암호수공원과 박상진호수공원에는 낙엽수가 많아 만추의 느낌이 진하게 나오지만 명덕호수공원은 상대적으로 소나무가 많아 푸른 빛이 더 진하다. 이 호수공원은 지난 2010년 현대중공업이 일대 주민들을 위해 부지를 영구 무상임대해 줌에 따라 공원화사업이 이뤄졌다.

한마음회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명덕호수공원의 산책길은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데크로드를 따라가면 길은 어여쁜 인공조경 같은 숲 속으로 들어 갔다가 데크로드로 다시 이어진다. 호수의 맑은 물이 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아 하늘과 호수가 하나가 돼 있다.

명덕호수공원은 호숫가에 낙락장송들이 우거져 호수 중앙 쪽으로 굽어 자라고 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데크로드가 끝나면 걸을 때마다 바삭바삭 소리를 내는 마사토길이 이어진다. 언덕을 따라 흙길을 한번 굽어 돌면 ‘해맞이교’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면 물가 쪽에 ‘아한정(雅閑亭)’이 서 있다. 한낮에 아한정에 앉아 있노라면 은은한 물빛이 비쳐 올라 아한정을 더욱 단아하고 한가롭게 만든다. 아한정에서 더 나아가면 ‘달맞이교’가 나오고 그 다음에 또 하나의 정자 ‘돌안정’이 나타난다.

명덕호수공원을 한바퀴 도는데는 1시간 정도면 족하지만 그냥 쉬지 않고 무작정 걷기에는 너무나 풍광이 아름답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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