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로 움츠러드는 가장 많아
아버지의 역할·가치 재발견하게 할
‘행복 한 통’ 편지 공모 소식 반가워

▲ 정갑윤 국회부의장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자식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그저 대하기 어려운 분으로만 알고 있었다. 대학 2학년에 올라가면서 ROTC에 지원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폐가 결핵균으로 크게 손상됐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이염도 심한 상태였다. 결국 ROTC는 고사하고 죽음과 싸워야 했다. 절에 들어가 요양을 하며 대학을 다녔다. 고통스러운 것은 한끼에 한 주먹이나 되는 폐결핵 약을 매일 먹는 것이었다. 엄청난 약을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고, 기간도 무려 6개월 이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결핵약은 매우 독했다. 그래서 잘 먹어야 했고, 당시 사람들이 많이 택한 것이 보신탕이었다. 그런데 나의 부모님은 독실한 불자이셨기에 마치 이슬람교도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듯이 개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개고기를 일체 못먹게 하셨다. 그런데 결핵에 개고기가 좋다는 말을 들으신 아버지가 어느날 시장에서 개 한 마리를 잡아와 끓여 주셨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갖은 고생끝에 한푼 두푼 돈을 모은 뒤 해방이 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오셨다. 그런데 오시면서 배에서 모든 물건을 다 잃어버리고 온 식구가 몸만 귀국해 숱한 질곡의 세월과 싸우면서 살아오신 분이다. 당신도 형편이 어려우면서 주막에 들르실 때면 “날아가는 까마귀도 내 술먹고 가라”고 할 정도로 인심이 후하셨다. 사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형제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 형제들에게 늘 하신 말씀이 있었다. “개를 쫓아내도 나갈 곳을 보고 쫓아내라.” “부모 팔아서 친구 사라.” 지금도 아버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귀에 선하다. 그리고 그 말들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부모 팔아서 친구 사라”는 말씀이 오늘날까지 나를 지탱시켜주고 있는 친구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만들었다면 “날아가는 까마귀도 내 술 먹고 가라”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베푸는 삶이 주는 행복을 나도 모르게 터득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눈물이라면 아버지는 ‘소리없는 땀’으로 자식을 지어내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지금은 장성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세세한 지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고, ‘내가 좋은 것은 식구들에게도 좋으려니’ 하였고, ‘내가 싫은 것은 식구들에게도 싫으려니’ 여기면서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침밥만큼은 식구들과 함께 하려고 신경을 썼고, 아이들에게는 그 때가 밥상머리 교육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부와 관련해서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는 매도 적잖이 들었다. 인사를 하지 않거나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에도 엄하게 굴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육남매 아빠 경험, 리더십 연기에 도움’ 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영화 ‘퓨리’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잘생긴 미국배우 브래드 피트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었다. 말이 쉽지 6명의 아이를, 그것도 입양한 아이들까지 키우는 아버지란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표현대로 리더십이 없이는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그래서 브래드 피트의 말은 결코 빈 말이 아니라 절절한 체득을 통해 나왔을 것이다. 나 역시 국회부의장이라는 지위에 있다보니 많은 분들 앞에 나서고 있는데, 리더십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식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 즉 아버지노릇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억누르고,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며, 허물을 품어주고, 때로는 회초리도 들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요사이 주변을 둘러보면 하숙생 아니면 왕따로 전락하고 있는 아버지들이 적지 않다.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들이 더욱 더 움츠러들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 본인, 가족들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라도 아버지의 역할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침 반가운 소식이 있다. 여성가족부 등록 비영리단체인 ‘함께하는아버지들’이 주최해 ‘제1회 아버지와 함께 하는 행복 한 통(通)’이라는 편지 공모전이 펼쳐진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5036편의 편지가 답지했다고 한다. 특히 300여 명의 재소자들도 참여했다고 하니, 더욱 더 뜻 깊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아버지의 재발견이 이뤄지길 바란다.

정갑윤 국회부의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