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않고 논쟁 벌이는 갈등의 시대
해결 대신 불신의 골만 점점 깊어져
상대의견 존중해 상생할 방법 찾아야

▲ 권옥술 (주)대유 대표이사·재경울산향우회 부회장

말 많았던 말띠해가 또 이렇게 저물어져 간다. ‘시간이란 움직이지 않는 영원성의 움직이는 이미지’라고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였듯이 인간은 우리의 편의에 의하여 획을 끊고 점을 찍어 연·월·일·시간을 만들어 한해를 정리하고 마무리 한다. 시간이란 이용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수 없다고 하였듯이 인간은 그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자기 주장만 옳고 상대의 주장은 그르다는 의식이 은연 중 자리 잡아 ‘내 생각은 맞고 너 생각은 틀리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되어 우리 주위가 일 년 내내 시끌벅적하다. 그야말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가 너무나 아쉬운 것이 현실이다.

원효대사가 장님들이 코끼리 만지고 난 후의 얘기들을 비유한 말이 있다. 여러 장님이 코끼리를 만졌는데 코를 만진 이는 “코끼리는 길다”고 했고 배를 만진 사람은 “벽과 같다”고 했으며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과 같이 생겼다”고 했다. 이런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원효대사께서는 “모두 옳고(皆是), 모두 틀렸다(皆非)”라고 했다. 어느 누구도 코끼리의 전체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만지고 난 후 길고, 벽과 같고,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것 또한 어느 것 하나 틀리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이런 각각의 생각들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옳다면 ‘모두’ 옳고, 틀렸다면 ‘모두’ 틀렸다. 왜냐면 코끼리 전체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는 맞기 때문이다. ‘개시 개비’는 어떤 입장도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며 각각의 주장을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두고 많은 이들이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외치면서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불신의 골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논쟁만을 벌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진 않아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여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야만 하는데 문제는 상대를 적대적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골이 깊어져만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 생각은 맞고 너의 생각은 틀리다”라는 생각, 언제까지 이런 이분론적 사고에 빠져 끊임없이 논쟁만 거듭할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가르친 7가지 지혜 중 ‘관습을 타파하라’는 것이 있다.

이미 형성된 관습이나 습관은 늘 생각하던 대로 우리를 행동하게 하고 우리의 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우리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결정짓게 한다. 그렇게 고정된 생각이나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습, 고정관념을 타파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용기와 결단이 지금 필요하다. 이 세상에 산만 있고 강이 없다면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질 수 있을까. 가을 단풍이 전부 빨강이거나 또는 전부 노랗다면 우리가 과연 그 경치를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자연이 이와 같듯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자. 상대방의 주장에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조금 더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또한 쉽게 이루어지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해야만 할 때이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고 한 개시(皆是) 개비(皆非)의 가르침으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신뢰, 이런 폭넓은 사유를 가질 때 우리는 좀 더 나은 사회 살맛나는 세상에 살 수 있지 않을까.

권옥술 (주)대유 대표이사·재경울산향우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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