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울산의 미래는 과거에 있다

▲ 울산의 도심 가운데로 흐르고 있는 태화강. 울산은 급속한 산업화 등으로 도시가 체계적으로 조성되지 못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경상일보 자료사진

울산은 조그만 어촌에서 한국의 산업수도에 이르기까지 숨가쁜 반세기를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도시의 기억들이 매몰되고 그럼으로써 기형적인 도시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지만 매몰된 기억들은 부실하기만 하다. 이에 본보는 매주 화요일 울산이라는 도시의 형성 과정을 되살리고 이를 통해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한다. 글은 광역시 승격 이전과 이후로 나눠 모두 13개의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13개 주제는 다시 세부항목별로 나눠 연재를 이어갈 계획이다.

대한민국 공업화의 실험장 울산
짧은시간 대규모 개발 추진으로
공해·무분별 개발 등 부작용도

울산의 도시화 과정 재조명하고
더나은 미래 위해 교훈 찾아야

요즘 젊은 층에서는 ‘썸’이란 노래가 유행이다. 가수 정기고와 소유가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 가사를 빌려서 울산의 성격을 표현한다면 이렇게 될까? ‘울산은 도시인 듯 도시 아닌 도시같은 산업단지인가, 산업단지인 듯 산업단지 아닌 산업단지같은 도시’인가.

울산이라는 도시의 ‘지금’을 가장 잘 나타내는 한마디는 역시 ‘산업도시’다. 울산시가 내놓은 최근의 통계자료를 보면 2012년 울산지역 산업단지의 연간 총생산 실적이 무려 210조원이라고 한다. 2011년의 1인당 GRDP는 약 6200만원에 이른다. 울산에서 거두어들이는 국세는 연간 9조5000억원이고, 지방세는 1조5000억원이다. 울산에서 생산된 제품이 울산이나 국내에서만 소비되지도 않는다. 2011년에는 처음으로 울산시의 연간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넘기도 했다. 울산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산업도시인 만큼 산업구조도 특별나다. ‘광업 제조업’이 75.4%를 차지하고, ‘서비스 및 기타산업’은 21.1%에 그치고 있다. 보통의 도시라면 이것이 뒤바뀌어 있어야 정상이다. 울산이 극단적인 공업중심 도시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울산시가 평범한 읍에서 시가 된지 올해로 만 53년이 된다. 광역시로 승격된 지도 만 18년째를 맞는다. 이쯤에서 울산이 변함없이 ‘공업’에만 목을 매는 것이 진정 울산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지 현 시점에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 울산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개발 이래로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울산의 주력 산업인 조선과 석유화학 업종의 부진이 심각한 탓이다. 조선과 석유화학 분야의 앞날이 먹구름인 것도 문제지만 울산이 태생적으로 대한민국 공업화의 실험장이라는 사실도 큰 짐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달러가 못되던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처음으로 공업단지로 개발된 곳이 울산인 만큼, 공단건설과 도시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오히려 시행착오와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한 두가지 예를 들자면 한때 울산의 상징과도 같았던 공해문제, 울산의 특성이 무시된 도시개발 방식 같은 것이 떠오른다. 도시개발에서 실수란 우리 생애에 다시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데, 울산이 내고 있는 비싼 수업료는 다른 후발 산업도시에는 혜택이 되고 있으니 심경이 복잡해진다.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를 꼽자면 땅과 시설물, 그리고 사람이 있다. 시설물로는 건축물, 도로, 항만, 철도, 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건축물은 다시 주택, 공공건축물, 병원, 학교, 문화시설, 공장 등으로 구분된다. 도시를 구성하는 이런 요소가 두루 잘 갖추어지면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도시개발 주체나 계획가들은 사람들이 일하고 먹고, 잠자는데 불편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편안하고 안전하며, 쾌적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각종 도시 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지면 좋은 도시가 될까. 울산의 경우 지금 추진 중인 미술관 정도만 제외하면 이제 있을 만한 것은 대부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울산이라는 도시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고, 살고 싶은 매력있는 도시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광역시 승격 이후 울산은 태화강물이 맑아지고 둔치가 잘 정비되었다. 외지인도 찾을 만한 공원도 여럿 갖추었다. 작지만 특성있는 고래박물관과 대곡박물관 같은 문화시설도 찾을 만하다. 출·퇴근 때면 막히기도 하지만 시원하게 뚫린 도로망이 사통팔달이다. 오랜 시간 계획과 투자로 이런 인프라를 갖추었지만 여전히 울산 도심에서 품격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울산이라는 도시를 과연 누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도시가 되기를 바라고 계획하고 개발했기에 지금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이 글에서 앞으로 자세히 들여다 볼 부분이다.

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특히 울산의 도시역사에 대해 많은 주장을 펼쳐 왔다. 우선 ‘도시역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독일의 문화학자 얀 아스만과 알라이다 야스만 부부는 역사란 ‘시간’이 아니라 ‘기억’이며, 특히 ‘문화적 기억’이 역사라고 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울산시민은 공유하고 있는 ‘집단기억’이 없거나 아주 짧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울산시민 대다수가 일자리를 찾아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집단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우리가 남이 아니라는 동질성을 심어주고, 도시변화에 대해 공통의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관점에서 울산의 과거를 찾아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도시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울산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필자가 울산의 도시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울산의 미래를 디자인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과거는 우리 미래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교과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찰나일 뿐이다. 현재는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된다.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으로 저장된 과거를 잘 들여다보면 미래를 위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나간 과거 속에는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이들이 그들의 눈앞을 가로막았던 수 많은 난제들을 풀어내고자 고뇌하고 노력했던 것들이 때로는 성공이란 이름으로, 때로는 아픈 실패로 아로 새겨져 있는 법이다. 내가 지나온 과거 속에 나의 미래를 열어 줄 답이 있는데도 찾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면 문제다. 특히나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선택할 수 없고, 옮길 수도 없는 유일한 요소인 땅은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동일하다. 이런 관점에서 울산의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울산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이 땅에서 앞 서 살았던 이들의 지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글에서는 초지일관 이런 태도를 지켜나갈 참이다.

이 연재에서 다루는 대상은 울산이다. 그러나 울산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양한 것으로 준비했다. 망원경도 쓰고, 현미경도 쓸 것이다. 우선, 울산의 강과 산이 어떻게 변했는지 돌아보고, 주택을 비롯해서 많은 도시 시설이 언제 무슨 이유로 만들어져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본다. 이런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시계획은 물론이고 도시개발과 재개발, 건축학, 랜드스케이프, 토목학, 고고학은 물론 역사학적 관점도 빌려 올 참이다. 고지도와 지형도, 지적도와 토지대장도 동원하고, 항공사진, 위성사진과 함께 개인이 찍은 사진도 쓸 참이다. 국가기록원과 울산시, 국내외 도서관의 자료도 활용하며, 울산을 연구한 선학들이 남긴 연구결과물에서도 배우고 참고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울산은 아주 짧은 시간에 초 대규모 개발이 추진되면서 기존 질서가 완전하게 무너진 반면 새 질서는 갖추어지지 않은 도시다. 노도처럼 밀려들어 온 사람과 자본과 기술이 삼켜버린 땅이다. 그런데다가 그동안의 개발과정을 볼 때 도시계획의 기준도 불분명했다. 대통령의 한 마디가 도시계획을 바꾸고, 대기업이 토지이용계획을 뒤집은 예가 있다. 땅의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항상 앞서고, 울산의 특성을 살리기 보다는 경제논리가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울산 안에서 답을 찾기보다 늘 울산 밖에서 답을 구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울산은 너무나 개발 주체가 많은 도시가 되고 말았다. 사공이 많다보니 배가 제대로 못 가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가는지 아닌지를 짚어볼 필요성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울산은 특정공업지구로 개발이 시작된 이후 울산 밖에서 이루어진 원격조종에 의해 도시가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 개발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은 축적되지도, 계승되지도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울산이라는 도시가 걸어온 길을 잘 조명해서 울산의 미래를 위한 지침이 될 교훈을 찾아보자. 지금이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울산의 과거로 떠날 때다. 미래 울산이 품격있고 매력있는 도시가 되는 길을 찾아서 말이다.

 

▲ 한삼건 교수

■ 필자 한삼건 교수는…

울산 출신으로 학성고 및 울산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교토대 대학원 건축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 1995년부터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조선시대 읍성의 변용, 일제강점기의 도시화, 역사적 자산을 활용한 도시디자인 등이다. 주요저서는 <한국근대 도시경관의 형성(교토대 출판부)>, <지역성을 살린 도시디자인(울산대 출판부)>, <울산택리지(종출판사)> 등 다수가 있다. 2013년 일본건축학회 저작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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