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 사회는 언론개혁문제를 둘러싸고, 홍위병(紅衛兵)과 곡학아세(曲學阿世)로 입씨름이 있었다.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홍위병은 1960년대 후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있을 때, 혁명의 전위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을 앞세운 문혁은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 등 4구타파(四舊打破)를 주창한 것이었는데, 당시 이 문혁으로 축출 당한 등소평은 오히려 재기하여 오늘의 중국을 건설하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에 비하여, 곡학아세는 학문을 굽히어 세속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정도를 벗어난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을 이르는 고사성어이다. 옛날 중국의 한나라 때, 당시 황제인 효경제(孝景帝)가 산동지방의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직언을 서슴치않는 어진 선비를 등용하였다. 이를 못마땅히 여겼던 사이비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 비방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황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  원고생은 당시 세상이 어지러워서 학문의 정도가 무너지고 속설이 유행하고 있다는사실을 직시하고. 이대로 내버려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그 본연의 모습을 잃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젊은 선비에게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닦아서 세상을 구제하는데 힘쓰고,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 이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없도록 당부하였다.  절개와 지조를 꺾는 변절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교묘한 변명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변절이라면 그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곧은 절개로 권력과 명예 앞에서도 초연한 사람들을 만나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숙연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곡학아세는 세류에 영합하는 속물의 대표적 행태로 표현하던 말이다.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도 청렴결백한 세상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곡학아세의 폐해가 없는지 차제에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본다. 그러나 어디 누가 감히 곡학아세를안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와 관련해서 지난 정권 초기에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쓸모가 있을 때는 긴요하게쓰이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에 한나라 고조가 된 유방(劉邦)은 자기를 도와 초나라 패왕 항우(項羽)를 멸한 일등공신 한신(韓信)을 자신을 얕본다고 오해하고는 앞뒤 가리지 않고 숙청해버렸다. 이에 한신은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하늘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漢)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한 내가 고조의 손에 죽게 되는구나하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원래 이 토사구팽은 기원전 5세기 춘추시대때,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국(吳國)을 멸한 범려가 구천이 패왕이 되자 친구에게토사구팽이 적힌 편지 한통을 남기고 일등공신의 공적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데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출세욕에 눈이 어두운 지식인의 곡학아세는 만연되어 있고,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 회사를 살린다는 구조조정의 구실로 토사구팽의 사례가 빈번하여, 세상사의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도대체 분간할 수 없다. 이런 세상사가 보편화된 사회일수록 인간관계의 갈등구조는 치유하기 어렵게 깊어지게 마련이다. 꼭우리 사회가 이 모양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스럽다.  차제에 무엇이 곡학아세이며, 토사구팽인지를 살필 줄 아는 안목울 가져야 되겠고,또 이런 세상사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할 줄 알아야 하겠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