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혈연은 수천겁 쌓여야 가능한 인연
어릴 적 추억 가득한 고향 친척과 친구들
세월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건 인지상정

▲ 권옥술 (주)대유 대표이사·재경울산향우회 부회장

‘시간이란 움직이지 않는 영원성의 움직이는 이미지’라고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였듯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갑오년이 지나고 을미년 양띠 해를 맞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가고 있다. 팍팍한 객지 생활을 오래한 탓인지 귀소 본능인지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그리워지고 가고 싶어진다. 무시로 고향 친구들도 보고 싶다.

필자의 고향은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평리 괴말 마을이다. 이따금 고향을 방문하면 고향 마을을 두루 돌아보곤 한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주던 고헌산은 더할 나위 없이 푸근하다. 차를 타거나 걸어서 골목길을 따라가보면 지금은 많이 변해버렸음에도 온갖 추억들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울긋불긋 진달래 꽃으로 물든 산자락, 장단 맞춰 부르는 뻐꾸기 노래소리,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노고지리 우지지는 보리밭 물결, 살을 에이는 겨울 고헌산 눈바람, 한손엔 책가방 한손엔 단어장 들고 걸어가는 논두렁길 꼬부랑길 신작로길이 눈앞에 선하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거리는 왕복 약 12㎞이다. 집에서 언양과 상북까지 학교를 가려면 신작로길 또는 고헌산 자락을 넘어 모단마을과 공동묘지를 지나 도동을 거쳐야 했다. 지금도 기억에 너무나 생생한 것은 비 오는 날의 풍경이다. 모단 길은 왜 그리도 질퍽한 지 발이 푹푹 빠져 신발과 교복바지는 완전 흙투성이가 되곤 하였다. 철없던 학창시절을 뒤돌아보면 오늘은 이 친구 집, 내일은 저 친구 집을 오가며 밤마다 고구마, 수박, 닭서리로 날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학교 가서는 졸다가 선생님께 혼도 나고 벌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돌아서면 낄낄 대고 즐겁기만 하였다. 추억들이 소복소복 쌓인 모교와 고향 산천, 시골마을, 꼬부랑길, 논두렁 밭두렁길,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내 영혼의 자산이자 값진 추억들이다.

꽤 부자였던 우리집은 7남매의 막내아들인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학교 가는 시간만 해도 꽤 많이 걸렸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소꼴을 베고 소죽을 쑤어 놓고야 학교를 갈 수 있었던 게 당시 우리 집 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유년기의 그 가난과 방황과 고통과 시련은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이자 원동력이 된 크나 큰 선물이었던 것 같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그 길에는 언덕도 있고 냇물도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안전하게만 갈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라고 하였듯이 고통과 시련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된다고 여겨진다.

서울에서도 고향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크다. 인연의 소중함을 살펴보면 지연과 학연과 혈연은 1000겁, 7000겁이 쌓여야 이루어진다고 한다. 1겁은 1유순이라고 하는데 동서남북 상하 16km의 큰 바위에 100년에 한번 씩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치마 자락이 닿아 닳아도 없어지지 않는 긴 시간이라고 하니 범인들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들이다. 이는 만남과 인연(因緣)의 소중함을 강조하고자 한 말일 것이다. 고향의 일가친척과 친구와 선후배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보고파지고 그리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생각된다.

권옥술 (주)대유 대표이사·재경울산향우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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