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복합유산의 보고(寶庫)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프로젝트

▲ 천전리 각석~반구대 암각화 구간에 발달한 곡류하천지형과 구하도. 한 마리의 용이 휘감고 돌아간 듯 역동적인 모습을 간직한 대곡천에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대곡천의 빼어난 자연유산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곡천에 문화유산들이 풍부해 질 수 있었다. 자연과 문화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자연 속에 문화가 있고 문화의 다양성은 자연과 함께 할 때 더욱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우리 모두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대한 더 큰 이해가 필요하다.

◇대곡천에 흐르는 문화유산

인류의 번성과 문명의 발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강(江)이다. 강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숨쉬고,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거대한 역사책과도 같다. 이 역사책의 울산편을 한 번 펼쳐 보자.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7천 년 전, 바위에 남긴 이야기’편이다. 이 이야기는 울주군 대곡천 반구대 일원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만 동물과 사람을 포함하여 약 300여명에 달하고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은 한편의 멋진 명작(名作)과도 같다. 특히, 이야기의 마지막에 삽입되어 있는 한 장의 반구대 암각화 그림은 그 어떤 명화(名畵)보다 뛰어나다.

‘7천 년 전, 바위에 남긴 이야기’는 ‘국보 제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이 바위에 남긴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삶의 모습이 담긴 일종의 ‘풍속화(風俗畵)’이다.

반구대 암각화 외에도 울산 대곡천 일원에는 우리 선조들이 바위에 남긴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과 구곡문화(九曲文化)로 알려져 있는 석각구곡(石刻九曲)의 흔적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만 바위에 그들의 삶의 흔적을 남겼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그럼, 선사시대 이전에 바위에 남겨진 흔적들이란 무엇인가? 그건 바로 1억 년 전에 살았던 공룡이 남긴 발자국들과 1억 년의 세월 동안 자연이 만들어 놓은 하천지형들, 그리고 다양한 퇴적구조(예: 물결자국, 건열, 빗방울자국)와 자연의 에어컨인 풍혈(風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암각화 그림부터
공룡발자국·암석·풍혈,
하천 물길이 만들어낸 다양한 지형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복합유산의 보고

대곡천의 절경 읊은 선인들의 글과
겸재 정선의 반구도도 귀한 문화유산

◇대곡천에 흐르는 자연유산

예부터 울산광역시에서 가장 큰 하천인 태화강은 울산의 정신적, 물질적 근원이자 삶의 중심지이다. 태화강은 울산 서부지역 산지에서 발원하여 구량천, 반곡천 및 대곡천 등의 지류와 합류하며 동쪽으로 흐른다. 특히, 울주군 두동면과 언양읍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은 깊은 산세를 굽이굽이 휘돌아 도는 곡류하천으로 주변의 산봉우리와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만들고 있다.

대곡천 일원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 년 전)때 만들어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암석들은 책장을 쌓아 놓은 듯 켜켜이 쌓여있다. 이는 마치 책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처럼 아래에 쌓인 암석은 위쪽에 쌓인 암석보다 오래된 것을 의미하며, 암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마다 당시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따라서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암석들을 보고 ‘지구 역사의 교과서’라고 부른다.  

▲ 대곡천 일원의 자연유산 분포지도.

대곡천의 암석에도 1억 년 전의 흔적들이 잘 기록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억 년 전에 살았던 공룡이 남긴 발자국이다. 공룡발자국 화석은 공룡이 생활하면서 남긴 흔적으로 공룡 골격화석과는 매우 다른 학술적 가치를 가진다. 공룡발자국을 통해 어떤 종류의 공룡이었는지,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였으며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었는지, 단독 혹은 집단생활을 하였는지 등 공룡의 서식환경과 습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정보를 밝혀 낼 수 있다. 울산시민들 나아가 대다수의 국민들은 울산지역에서 공룡발자국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지만 울산은 ‘중생대 공룡의 낙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공룡발자국들이 많이 보고되었다. 특히, 울산지역에서 확인된 공룡발자국 17곳 중 11곳이 대곡천 암각화군 일원(국보 제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 구간)에 분포하며, 반구대 암각화 바로 아래 암석에서도 약 80여개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조사된 17곳의 공룡발자국은 450여개에 달하며 확인된 발자국의 약 95%이상이 초식공룡의 발자국이며 육식공룡의 발자국은 5% 미만이다. 울산에서 확인된 공룡발자국들은 대부분 태화강 수계를 중심으로 산재되어 있으며 특히, 대곡천 하상에 밀집돼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대곡천 암각화군 일원에는 공룡에 의해 남겨진 기록 외에도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들도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곡류하천지형(曲流河川地形)과 구하도(舊河道), 그리고 풍혈(風穴)이다. 곡류하천지형은 오랜 시간 동안 하천에 물이 굽이쳐 흐르면서 주변 암석을 침식시켜 만든 지형으로 뱀이 휘감아 돌아가는 형상을 닮았다하여 ‘사행천(蛇行川)’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곡천 곡류하천지형은 울산의 가장 대표적인 하천지형으로 이곳에서는 구하도, 우각호(牛角湖), 곡류사주(曲流砂洲)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하천지형이 함께 발달한다. 구하도란 과거 하천 물길이 흘렀으나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고 하천의 흔적만 남아있는 지형을 말한다. 구하도는 곡류하천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지대가 낮고 물을 쉽게 모을 수 있어 거주지나 농경지로 많이 이용된다. 현재 대곡천의 구하도 역시 주변의 낮은 산지로 둘러싸인 약 1.8km 둘레의 도넛형 평탄지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 지역이 농경지(행정구역상 대곡리 반구대안길 ‘동매실들’)와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대곡천 구하도 내에는 늪지 상태의 우각호(牛角湖) 잔재가 남아있다. 또한, 뱀이 휘감고 돌아가듯, 깊은 산세를 굽이굽이 휘돌아 발달한 대곡천의 하천지형에는 주자의 주역적 통합사고를 결부시켜 만든 백련구곡(白蓮九曲), 반계구곡(磻溪九曲), 석각구곡(石刻九曲)과 같은 구곡문화(九曲文化)가 자연유산과 더불어 공존하고 있다.

대곡천 반구대 근처에는 한여름일수록 시원한 바람이 강해지고 한겨울일수록 따뜻한 바람이 불어나는 곳이 있다. 바로 풍혈(風穴)이다. 풍혈은 바위틈의 바람구멍으로 여름철엔 찬공기가 나오거나 얼음이 얼고, 겨울철에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풍혈에는 ‘천연기념물 제224호 밀양 남명리 얼음골’과 ‘천연기념물 제527호 의성 빙계리 얼음골’이 있다. 대곡천 반구대 근처에는 약 60m 거리를 두고 2곳의 풍혈이 발견되었다. 조사결과, 6월 초부터 8월 초까지 풍혈 주변의 온도는 외부 기온과 평균 10.4℃(최고 11℃, 최저 9.8℃)의 차이를 보였다. 얼음이 어는 모습은 관측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 온도차라면 ‘자연 에어컨’이라 불릴 만하다.

◇복합유산의 보고 ‘대곡천 암각화군 일원’ 

▲ 공달용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사

대곡천의 문화유산에는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 ‘국보 제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및 ‘구곡문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반구대와 대곡천 주변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와 글 또한 많다. 권해(權瑎), 이만부(李萬敷), 권상일(權相一), 최종겸(崔宗謙) 등이 남긴 시와 글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겸재 정선(鄭敾, 1676~1759) 선생이 반구대의 뛰어난 경치를 그린 반구도(盤龜圖)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울산의 구곡문화를 만들어 낸 곡류하천지형과 구하도, 한여름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풍혈, 1억 년 전의 환경을 알려주는 물결자국, 건열, 빗방울자국과 같은 다양한 퇴적구조, 그리고 수많은 공룡들이 남긴 공룡발자국 화석 등 자연유산 또한 풍부하다.

이처럼 대곡천 암각화군 일원은 선사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뛰어난 문화유산과 다양한 자연유산이 공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복합유산(mixed heritage)의 보고(寶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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