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회화로 문명의 진보 이뤘지만
인류 행복에 공헌했다고만 볼 수는 없어
인문학과의 결합으로 ‘깊이’ 갖출 필요

▲ 전상귀 법무법인 현재 대표 변호사

딸의 중학교 졸업식을 다녀왔다. 졸업식은 학교의 시청각실에서 행사를 하고 각 반에서 중계를 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연설순서가 되자 믿기지 아니한 일이 벌어졌다. 중계하는 TV를 보고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인사를 시키는 것이었다. TV를 보면서 교가를 부르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을 보고 인사를 해야지 기계를 보고 인사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우리는 TV를 보면서 인사하는 아이들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계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보화 사회가 고도화 되고 그 정보화가 디지털화로 변하면서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 사무실, 집안 그리고 차량까지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편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리모컨을 들거나 컴퓨터 마우스를 잡는다. 밥은 밥솥이,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며, 세탁기가 빨래를 하고 커피머신이 기호식품을 제공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문명의 이기들로 얻은 시간을 유용하게 인간적인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사용하고 있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속도에 물들고 기계화된 업무방식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반드시 남은 시간을 인간성의 회복에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관성적으로 인터넷을 켜고, 맹목적으로 휴대전화기에 문자나 사진이 왔는지 궁금해 한다. 잠시라도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면 불안해 진다. 어찌보면 디지털화 된 기구들에 중독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속도가 빠르고 짧은 시간에 대량의 정보가 해결되는 것이 대세이고 그 유용성이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으나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게임중독현상이 보고되고 있고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게임중독이나 휴대전화 중독은 청소년을 넘어 성년에게도 상당수 만연해 있다.

필자는 디지털의 유용한 점이 좋기는 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보완하여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정보량에 비하여 공감가는 정보가 적다는 점이다. 인터넷사이트에 많은 정보가 널려 있지만 양만 많을 뿐 정보의 질과 가치를 걸러주는 기능이 약하다. 정보를 거르려면 깊이 생각하여 정리하는 숙성의 기간이 필요하다. 사람과 자연의 본질과 본성에 대한 아날로그적인 연찬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말초적인 정보가 넘친다. 인문학 관점에서 봤을 때 사람의 삶에 지혜를 주거나 또는 교훈이 될 만한 정보는 많지 않고 단지 호기심만 자극하는 정보가 넘친다. 자극성이 적지만 성찰을 하라는 취지로 사서삼경의 깊이 있는 사상을 진중하게 검색하여 고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셋째, 정보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이 크다. 인적 정보가 해킹당해 범죄에 쓰이기도 한다. 보이스 피싱이 판을 치고 대형금융사고가 나기도 한다.

넷째, 가상의 공간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병이 늘고 있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 스스로 일어 서서 뛰는 것을 배우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필요한 존재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인품을 갖추고 교양을 구비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러한 노력이 디지털사회로 인하여 더 줄어든다면 문명의 진보가 행복한 인류를 만드는데 반드시 공헌했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날로그라고 반드시 비효율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천천히 그러나 깊게 생각하고 디지털의 힘을 빌어 이를 전달하거나 또는 깊은 인문학적인 성찰로 깨달은 것을 디지털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은 길 아닐까? 개발도상국의 청년시대는 ‘빨리 빨리’의 속도가 필요했다. 이제 저성장의 안정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00세 시대에 맞춰 속도보다는 깊이에 중점을 둬야겠다.

전상귀 법무법인 현재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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