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울산특별건설국

▲ 1964년 태화교 공사 장면.

울산특별건설국은 울산공업센터 개발을 추진하던 당시 정부의 시각을 상징하는 시설이다. 현재 남구 수암동 울산세관이 1965년부터 1976년 6월까지 울산특별건설국이 있던 곳이다. 이 시설은 울산공업센터건설 촉진을 위해 1962년 3월7일에 각령 540호에 의해 건설부의 전신인 국토건설청 직속 기관으로 설치됐다. 울산특별건설국은 중앙 정부부서인 건설부의 한 ‘국’이 울산에 들어 선 것으로 국장은 이사관(2급)이 맡았다. 이 직위는 도지사와 동급이었다.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는 1997년보다 35년 먼저 ‘작은 도청’이 있었던 셈이다.

공업센터 책임자 군부 엘리트로 구성
만 1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내최대 공업도시 기반 만들어
1970년대 중반까지의
지역내 간선도로 건설 도맡고
경남은 물론 포항제철 건설도 담당

초기 울산공업센터 개발의 책임자는 현역군인들이었다. 황인권 울산특별건설국장을 비롯해서 정래혁 상공부상관, 조성근 국토건설청장 등이 모두 육사를 나온 장성들이었다. 황인권 울산특별건설국장은 현역 육군 준장으로 공병학교장과 육군본부 공병감을 지낸 건설전문가였다. 그는 국토건설청이 1962년 6월18일자로 다시 건설부로 승격·부활하면서 단행된 국과장 인사에서 울산특별건설국장이 되었다. 국장 퇴임 후에는 다시 군으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공무원이 되었다. 조성근씨는 앞의 글에서 다룬 안경모씨가 차장으로 있던 국토건설청 청장으로 역시 현역 육군 소장이었다. 조 청장은 박정희대통령과 육사 동기로 나중에 건설부장관과 대한통운 사장, 현대건설 사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이런 군부 엘리트가 초창기 울산공업센터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 1962년 5월18일 미국 벤플리트 전 유엔군 사령관 방문(오른쪽이 황인권 국장).

설치 당시에는 아직 정식으로 국장이 임명되지 않았던 것 같다. 박정희 의장이 기공식 후 처음 울산을 시찰한 것이 1962년 3월30일인데, 이날 오후 2시부터 울산읍내 소방서 자리에 있던 임시 사무실에서 울산특별건설국장 대리 서연관이 공업센터 개발 현황을 브리핑 했다는 신문기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2년 5월18일에 벤플리트 전 유엔군 사령관이 이끌고 온 미국상공인들의 울산방문 때는 황인권 국장이 현역 장성 군복을 입고 브리핑을 맡았던 것이 자료에서 확인 된다.  

공업센터 개발 초창기의 울산은 말 그대로 미개발지였기 때문에 대단위 공장입지를 위한 각종 기반시설 조성이 필요했다. 즉, 제대로 된 대단위 공업단지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도로, 철도, 항만, 공장용지, 공업용수, 통신, 전력 등의 기반시설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울산개발 주체와 관련 기관 사이의 유기적인 협력과 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바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고회의가 울산개발위원회와 울산개발계획본부, 그리고 울산특별건설국을 서둘러 설치했던 것이다. 그 후 1963년 12월에 법률 제1506에 의해 울산개발위원회와 울산개발계획본부가 폐지되면서 울산공업센터 건설 지원 업무는 울산특별건설국이 전담하게 되었다. 당시 울산개발 주체는 크게 세 그룹으로, 울산시가 택지개발을 맡고, 경상남도는 각급 공장용지를 공급하고, 기타 기반시설은 모두 울산특별건설국이 도맡아서 진행했다.

 

 

 

 

▲ 1967년 12월22일의 태화강 취수탑.
울산특별건설국의 권한은 막강했다. 지방행정 조직이 아닌 중앙정부 부처인데다가 4급 서기관인 울산시장보다 건설국장이 고위직이었다. 그 덕분에 효율적인 울산개발은 가능했겠지만 울산시 입장에서는 옥상옥이기도 했다. 울산특별건설국의 초기 직제는 국장, 부국장 밑에 조사기획실과 관리과, 경리과 외에 3개의 공사과, 중기자재과, 그리고 울산축항사무소를 두었다. 1963년 5월31일의 직제 개정 후에는 국장과 부국장 밑에 기획관, 서무과, 토목과, 용수과, 축항과, 치수과, 기재과 등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울산특별건설국이 담당했던 80여건의 주요공사를 종류별로 간략하게 살펴보자. 먼저 공업용수 개발로는 선암댐, 사연댐, 대암댐 축조공사 및 송수관로 공사를 했다. 공장용지 공사로는 정유공장 부지와 비료공장 부지 조성공사가 대표적이다. 가장 많은 사업실적을 낸 것은 도로 공사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 새로 조성된 모든 간선도로는 모두 울산특별건설국이 도맡았다. 산업도로로 불리던 문수로에서 수암로를 거쳐 장생포로 이어지는 6호선 노선을 비롯해서 현재의 산업도로, 두왕로, 염포로, 방어진순환도로, 장생포 해안도로, 봉월로가 모두 이때 개설되었다. 교량은 태화교, 명촌교, 동천교 등을 가설했고 울산교 확장 공사도 했다. 또 본항 항만(1-4부두, 준설 등) 공사 및 미포항 방파제 축조공사, 삼산비행장 확장공사도 울산특별건설국의 성과다. 이렇게 해서 1962년부터 1975년까지 울산특별건설국의 직접 투자실적이 141억원인데 비해 같은 기간 울산시의 투자실적은 69억원 정도였으니 울산특별건설국의 역할이 짐작된다. 참고로 같은 기간에 공장건설비를 포함한 울산지역 전체 투자실적은 내자와 외자를 합쳐서 무려 7871억원에 달했다.

울산특별건설국이 맡았던 공장용지 조성사업을 보도한 신문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1962년 9월25일자 ‘불도저에 밀리는 생계’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에는, “울산지구 공업센터의 정유공장 건립공사는 지난 10일부터 울산특별건설국에 의해 그 1차 공사(정유공장 부지조성공사)가 ‘불도저’ 등 중장비 50여대 등이 동원되어 고사리 일대의 3만800여 평에 대한 정지공사에 한창이다. 앞으로 1차 정지공사가 끝나는 대로 고사리 일대의 영세농가 194가구(885명)가 철거될 것이며 이 부락민들은 고사리에서 약 4킬로 떨어진 부곡리로 이주하게 된다”(이하 생략). 같은 기사에서 마을이장은 고사리 주민들이 일제시대 정유공장 건설로 이미 한번 강제 이주를 했으며, 보상에는 불만이 없으나 경작하던 귀속농지(적산토지)를 내놓게 되어 생계가 막연하니 공장건설현장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주택건립자금을 대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울산특별건설국이 울산지역 개발만 담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상남도 지역은 물론 포항제철공사도 울산특별건설국이 맡고 있었다. 1966년 5월14일자 경향신문 기사에는 부산지검이 울산특별건설국 소속 토목기사 등 직원 3명이 진해만에서 작업 중인 준설선에 공급할 중유 400드럼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한편 1968년 5월1일 오전에는 포항시 덕산동 소방서 2층에서 김병옥 울산특별건설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특별건설국 포항공업지구 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다. 이 사무소가 포항제철 건설을 담당했던 것을 보면 울산특별건설국은 울산공업센터 뿐만 아니라 국토동남권의 기반시설 건설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이처럼 설치 이후 울산공업센터의 기반시설 공사에 매달리던 울산특별건설국은 1971년 11월의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들로부터 “공업단지 조성사업 등 지원사업이 거의 끝난 만큼 철수용의는 없는가”하는 지적을 받게 된다. 이로부터 5년이 지난 1976년 6월에 울산특별건설국은 폐지되지만 설치 후 만 1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개발지였던 울산이 국내 최대의 공업도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당시 울산개발이 국가적 중심과제였고, 공업단지 조성이 지상과제였던 만큼 울산특별건설국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울산개발의 값비싼 경험은 울산 자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 되지 못한 점도 있다. 모든 일은 울산에서 이루어졌지만, 사람은 울산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산특별건설국에서 일했던 사람들 가운데 2012년 울산공업센터 50주년 기념식때 초청을 받아 울산을 찾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김의원 전 경원대 총장이다. 그는 우리나라 국토개발사의 대표적 인물인데 1969년 4월15일자로 울산특별건설국 서무과장으로 발령 받아서 일한 적이 있다. 또 주찬응 전 주식회사 금강 사장은 울산공업단지 조성 때 10여년간 호흡을 맞추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울산모임’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82년 5월24일자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를 보면 이 모임에는 성백전 전 한국해외건설 사장, 이일선 전 롯데건설 사장, 장달진 전 동아건설부사장, 서영관 전 삼호개발 사장, 전 감사원 위원 황인권씨 등의 이름이 보인다. 황인권씨는 초대 울산특별건설국장을 지낸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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