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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다시 읽는 반구대 암각화
[7천년의 메시지, 다시 읽는 반구대암각화]천전리 각석의 배그림, 신라인 해상교역 보여주는 중요자료3. 대곡천 바위에 그림으로 쓴 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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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2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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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전리 각석 탁본  
 

대곡천 암각화군은 크게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3㎞에 걸친 대곡천 계곡의 바위절벽에 새겨져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1995년 6원23일 국보285호로, 천전리각석은 1973년 5월4일 국보147호로 지정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 시대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대곡천 암각화군은 2010년 1월에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위한 사전 조치로 잠재목록에 등재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2017년 세계문화유산등재를 공약한 바 있다.

반구대 암각화, 동물·사람·연장 등
면·선새김의 방법으로 300여점 표현
여름엔 고래 겨울엔 사슴사냥 한 듯
사냥법 등 교육을 위한 기록으로 추정

천전리 각석, 상·하부 나누어 기록
상부엔 기하학적무늬·추상화된 인물이
하부엔 기마행렬·배그림·글자 등 새겨져
신라 화랑들의 기록도 큰 비중 차지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반구대암각화의 공식 명칭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다. 사람에 따라서는 대곡리암각화 또는 반구대 바위그림으로도 칭한다. 발견자인 문명대 교수는 대곡리 암각화를 고집하는 편이다. 필자처럼 암각화 대신 바위그림으로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곡리 암각화 주변 마을 사람들은 ‘글쓴 바위’ ‘귀신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반구대 바위그림은 1971년 크리스마스 날인 12월25일, 집청정 주인인 최경환 옹의 안내로 문명대 동국대 교수 일행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다. 대곡리는 원래 경주 외남면 대곡리와 언양현 중복면 대곡리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1914년 언양면 대곡리로 통합 되었다. 이 암각화는 소위 ‘건너각단’이라 불리는 대곡천 계곡의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 중 위가 지붕처럼 튀어나온 바위그늘의 널따란 바위표면에 그려져 있다. 건너각단은 대곡리 서북쪽 내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반구대 암각화 탁본
반구대 바위그림은 높이 약 70m, 너비 약 20m의 바위벽에서 물에 가까운 아랫부분에 높이 약 4m, 너비 약 10m 규모다. 바위의 구조를 보면 바위그림의 바로 동쪽방향으로 ‘ㄱ’자 모양으로 꺽여 있고 윗부분은 약간 튀어 나와 챙이나 처마 처럼 되어 있어서 풍우에는 비교적 잘 보존이 되는 구조이다. 바위는 연한 갈색 퇴적암인 켜바위(shale)로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기 좋은 무른 암질이다.

바위그림에 그려져 있는 표현물의 개수는 연구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조사방법의 차이나 표현물의 형상 인식 차이에 따라 다르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형상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237점 정도다. 전문가들은 형상을 알아 볼 수 없는 것까지 하면 약 300여점의 표현물이 반구대암각화에 그려져 있다고 본다. 여기서 사슴, 호랑이 등 육지동물은 97점이고, 고래를 비롯한 해양동물은 92점이다. 사람 형상의 그림도 17점이나 된다. 전체 237점 중에 고래 그림이 62점으로 제일 많은 26%를 차지하고 전체 해양동물의 75%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개체는 36점인 사슴류와 22점인 호랑이로 각각 전체의 15%, 9%를 차지한다. 배도 6점이 있고 그물, 작살 등 연장류도 6점이나 된다.

바위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그림의 윤곽을 새긴 후 내부를 고르게 쪼거나 긁어내어서 형상을 드러내는 면새김 방법이 있고, 그 다음은 윤곽과 동물의 특징적 요소를 선 또는 점으로 새겨서 형상이 드러나도록 하는 선새김 법이다. 개체 수가 많은 고래와 사슴류는 면새김 법과 선새김 법을 고루 사용한 반면 호랑이는 모두 선새김 법을, 사람은 면새김 법을 사용하였다.

고래중심의 해양동물 부분은 주로 따뜻한 계절(봄~가을)에 배를 타고 고래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고래의 종류와 생태, 사냥방법 등을 표현해 놓고 집단의 모든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고래와 고래사냥에 관한 모든 지식을 가르쳤던 것으로 믿어진다. 사슴과 호랑이 중심의 육지동물 부분은 주로 추운 계절(늦가을~초봄)에 사냥을 하면서 동물의 종류와 생태, 사냥방법 등을 가르쳤던 곳으로 생각된다.

대곡리 바위그림은 여름에는 고래사냥을, 겨울에는 주로 사슴사냥을 행하였던 집단들이 오랜 세월동안 세대를 거듭하여 살아가면서 자연환경과 사냥대상 짐승의 변화에 따른 사냥수단과 기술의 발달, 사회체제와 사회관습, 사유체계의 변화 등 변화되어가는 삶의 모습을 세대에서 세대로 가르치면서 남겨놓은 집단의 살아있는 역사로 풀이할 수 있겠다. 즉, 당시 선사인들의 사회·경제·종교·교육 등 생생한 삶을 총체적으로 기록한 요람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울주 천전리 각석

천전리 바위그림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다. 최근 천전리 각석을 ‘천전리 서석’으로 명칭 변경을 하자는 일부 주장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울주 천전리 각석’이다. 문명대 교수에 의하여 1970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발견되었고,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문 교수의 천전리각석 발견 뉴스는 1971년 1월1일자 한국일보에 그해 박정희 대통령의 신년사를 제치고 당당히 일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 되었다. 대곡리 바위그림에서 약 2㎞ 떨어져 있는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상류(지금은 사연댐의 최상부)에 앞으로 약 15도 기울어진 높이 약 2.7m, 너비 약 9.5m의 편암 바위벽에 그려져 있는데, 이 바위벽은 동북으로 놓여 동동남을 향하고 있다. 천전리각석은 건너편 절벽 위로 해가 뜨는 순간 볕이 들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거의 대부분 그늘 속에 있는 유적이다. 이 바위벽의 암질은 굳기 3.4도의 켜바위로 바위그림을 새기기에 매우 적합한 암질이다.

천전리각석에서도 반구대암각화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면새김 법과 선새김 법을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천전리각석은 사람이나 동물로 구성되는 구상표현물, 마름모꼴, 동심원 등의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기하문 표현물, 그리고 바위를 날카로운 칼과 같은 철제도구로 그어서 나타낸 세선각 표현물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천전리각석에 53점의 구상화표현물, 161점의 기하문 표현물과 69점의 세선각 표현물 등 총 283점의 표현물이 그려져 있다. 이중에서 마름모꼴류 기하문이 70여 점으로 제일 많고 다음으로 사슴과 사람이 각각 24점, 23점이 그려져 있다.

천전리각석은 중간을 기준으로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그림이 가득 차 있다. 상부에는 면새김 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그려져 있다. 하부는 선새김 법으로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는데, 귀족행렬, 기마행렬도, 바다를 건너는 배, 동물, 용 등 다양한 표현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기마행렬도는 세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간략한 점과 선만으로도 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배 그림은 당시 신라인의 해상 교역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글자는 800자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확인할 수 있는 글자는 300여자의 명문이다. 먼저 새겨진 것은 원명, 나중에 새겨진 것은 추명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원명에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갈문왕이 오래된 골짜기인데 이름이 없었으므로 좋은 돌을 얻어 글을 짓고 ‘서석곡’으로 이름을 삼고 글자를 지어 새겼다는 내용이 있다. 명문은 왕과 왕비가 이 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양한 명문들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신라 화랑들의 기록이다.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 전반부 신라사회의 다양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신앙,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문화유산이다.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박사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은 대곡천 바위에 그림으로 쓴 역사책으로, 우리 역사의 시원이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두 국보는 빠른 속도로 원형이 훼손되고 있다. 더 이상 훼손 없이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박사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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