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읍리(錢邑里)는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마을이다. 백운산의 주봉을 신하처럼 받들고 있는 아미산이 넓은 자락을 펼쳐 미호리의 목장지대를 만든데 이어 그 옆으로 전읍리의 여섯 동네를 보듬고 있다. 아미산에서 또 하나의 물줄기를 만든 곳이 수정내거랑이다. 면소재지인 인보리와 경계를 이루며 울산시민의 상수원이 될 대곡댐으로 흘러든다.

 전읍리는 신라시대에 돈을 만들던 곳이었다는데서 유래돼 돈골이라 불리다 조선시대 초기에 돈마을 또는 회은촌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전읍리로 불려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업인 논농사에 축산업을 부업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과 제법 규모가 큰 농공단지가 색다른 농촌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농공단지에서 마을에 특별한 혜택없이 환경오염 등으로 해만 끼치고 있지만 넉넉한 마을 인심이 그저그런 일로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청년회장인 박태일씨(42)는 "지난 91년께 언양~경주간 국도변에 조성된 농공단지에는 마을사람중 3~4명만 다닐뿐 큰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10년여 동안 각종 기름유출 등으로 민원만 생산해내는 골치덩어리로 변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농공단지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들 대부분이 부산이나 울산지역에서 기업체를 통체로 옮겨 오다보니 인력수요가 거의 없다. 게다가 인건비가 한달에 100만원을 못미쳐 젊은 사람들은 취업하기를 꺼리고 있다. 회사 대표나 간부들도 거의 가 외지에서 출퇴근 하고 있다. 마을을 위한 지원도 거의 없다. 연중행사인 두서면 체육대회때 겨우 20만원을 찬조하는게 고작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전읍리는 737.6ha의 전읍리와 46ha의 신전리 2개의 행정리로 나뉘어지고 다시 전읍리는 큰마을(대리), 양지마을, 달비터(월부), 수정내, 유촌의 5개 자연마을로, 신전리는 오붓한 한동네를 형성하고 있다. 전읍리는 170가구 남자 206명 여자 191명 등 397명이, 신전리는 105가구 남자 153명 여자 150명으로 총 303명이 살고 있다. 거주 인구수는 700명에 조금 못미치지만 농공단지 종사 근로자들을 합친 실제 유동인구는 그 2배에 달한다.

 전읍리에는 당면과제가 많다. 신전과 복안리를 잇는 군도 공사와 언양~경주간 국도 4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이어서 마을분위기가 어수선한데다 수정내 입구에는 대곡댐공사에 필요한 석재 채취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들고 나는 차들로 하루종일 소란스럽다. 유촌 들판이 대곡댐 담수권역에 들어가는 바람에 농토를 잃게 된 농민들의 마음은 어느 때 보다 심란하다.

 외곽 골짜기 분지 속에 숨은 듯이 살고 있는 수정내는 수중내라고도 불린다. 신라시대 수정승이 살던 곳이었다는데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라는데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정확히 수정내인지 수중내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수정내에서 넓은 들판으로 넘어오는 길목에는 신라의 관리였던 수정승이 말을 타고 내렸던 마돌(하마석)이 있었으나 최근에 없어졌다. 수정내의 물탕골 약수터는 마을 사람들이 다소 신성시 하는 곳이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이 위장병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의원씨(67)는 "약수물을 뜨러 갈 때는 사흘동안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보는 것조차도 가려야 제대로된 약수의 효험을 볼 수 있다"며 "부정한 행위를 한 사람이 물을 뜨러 가면 독사가 나타나 막았으며 억지로 물을 마시면 후환이 꼭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와 국도가 갈라놓은 외톨이 마을인 유촌은 백운산 태화강 줄기의 냇가에 자리하고 있다. 옛부터 버드나무가 많은 부자마을로 알려져 왔으나 대곡댐의 최상류에 포함돼 마을주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마을은 담수권역에서 제외됐지만 넓은 들판이 모두 만수때 위험지역으로 분류돼 올해부터는 농사를 짓기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최병태씨(60)는 "정부에서 보상을 한 상태지만 만수가 되더라도 물이 차지않을 지역에는 농사를 짓도록 해주어야 한다"며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할 경우 논에 잡초가 우거져 주변환경이 최악으로 변할 것이라며 한평생 함께 살아온 논이 잡초 속에 파묻혀 가는 모습을 어떻게 보고만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유촌에는 요즘 보기드문 기와공장이 2곳이나 있다. 큰 마을쪽인 세계에 있던 기와공장이 고속도로 주변 환경개선사업에 따라 10여년 전에 산너머인 이곳으로 옮겨왔다. 최근 흙기와가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늘어 물량이 달린다고 한다.

 큰마을과 양지마을 사이에는 초대형 비닐하우스 미나리꽝이 1만여평이나 펼쳐져 있다. 이재택씨가 10년전 이곳에서 시작,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청정미나리로 이름나 호텔 등으로 불티나게 납품됐으나 최근들어서 언양방면에서 공급물량이 늘어 초창기만큼 재미를 보지 못한다. 지난해부터 비닐하우스동 5개를 묵히고 있다.

 신전리(薪田里)는 전읍리와 달리 교통이 편리해 유동인구가 많고 두서·두동면의 유일한 두광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 12가구 3층짜리 빌라까지 들어설 정도로 유입인구가 늘고 있다.

 최해걸 이장(43)은 "고속도로와 국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10년전 60여가구에 불과하던 마을 규모가 거의 2배가량 팽창했다"며 "가구들이 흩어져 있지 않고 한데 뭉쳐있다 보니 단합으로 치면 두서면내에서 최고"라고 말했다. 마을 중심에 우뚝 솟아있던 수령 500년 된 당나무는 지난 78년께 고사했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 자시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를 지내고 있다.

 신전마을은 신라시대 선덕여왕이 돈골을 순시하기 위해 지금의 열박재에 이르러 저곳이 어디냐고 물었을때 한 신하가 숲이 우거져 있어 "섶밭"이라고 대답했다는데서 지금까지 섶밭골로 불리기도 한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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