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암각화란 무엇이고 왜 그렸나?

 

해가 잘 든날 오후 반구대 암각화 앞에 서면 어두침침한 바위벽에 서서히 햇살이 비치면서 고래 호랑이 등의 그림들이 살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며 수천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살아난 그림들과의 교감이 일어나는 신비로운 체험이다.

울주 대곡천 계곡의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가 알려진 이래 우리는 선사암각화라는 새로운 세계에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단순한 장식그림이 아닌, 선사인들의 삶과 정신세계가 압축된 신성한 믿음의 상징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바위에 새겨지고 또 어떤 곳엔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대곡천변의 반구대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왜 선사인들은 이러한 그림들을 세계 도처에 남겨 놓은 것일까?

글자가 가진 뜻만으로 보면 암각화는 바위에 새긴 그림이다. 어떤 지역에는 물감을 이용하여 붓으로 그린 것들도 있지만 시베리아 초원지역이나 몽골에서 중국 북부의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바위그림들은 거의 대부분이 바위를 쪼아 새긴 것들이다. 이 넓은 지역의 암각화들은 대부분 강변이나 샘이 솟는 곳의 주변 등 물 가에 있는 경우가 많고 또 태양을 볼 수 있는 동쪽이나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암각화는 물과 태양을 신처럼 모시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과 태양은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선사인들의 가장 원초적 숭배의 대상이다. 암각화가 이 둘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 북향을 하고 있어 다른 암각화들과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햇볕이 드는 시간이 다를 뿐 일정한 시간이 되면 해가 비치고 그림들이 선명하게 살아 있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특별히 다르게 볼 것은 아니다.

암각화 대부분 물가에 위치
햇볕에 따라 바위그림 더욱 선명해져
물·태양신 모신 이들의 신앙의 대상
대곡천 계곡은 신성한 장소

고래·호랑이 등 두려움의 대상 통해
먹거리 확보·자손의 번성 기원
사냥·제사 등 생활상도 새겨져
선사시대 역사책으로도 활용

반구대 암각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보존 노력·과정도 기록으로 남겨야

따라서 암각화들은 단순한 장식성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새긴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었다. 후대의 마애불상이나 마찬가지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러니 암각화는 그저 새기기 좋은 바위가 있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신성한 공간으로 여긴 곳에 새겼으리란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 두 유적이 이웃해 있는 대곡천 계곡은 고신라 시대에 신라의 왕족들이 치성을 드리던 장소였음을 보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신성한 장소인 것이다. 우리가 암각화 유적이 위치한 장소를 잘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그 장소 자체가 암각화와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여기서 무엇을 기원했을까? 선사인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먹을 것을 확보하는 것과 자손의 번성이었다. 새겨진 그림들은 어떤 것은 짐승이나 사람 등이 주로 등장하고 어떤 것은 원이나 사각형 곡선 등 우리가 알 수 없는 의미의 추상화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위의 두 가지를 기원하기 위해 새겨진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크게 보면 고래를 중심으로 한 바다 동물과 호랑이를 중심으로 한 육지 동물이다.

이런 동물들은 왜 암각화 속에 등장하는가? 먼저 고래는 어떤 동물인가? 우선 다른 물고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고래가 한번 물 위로 솟구치거나 몸을 흔들면 웬만한 배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또 등에서 뿜어내는 분수같은 물줄기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면서도 새끼를 낳는 포유류이다. 이러한 고래의 특징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도 하며 그래서 신성성이 부여되기도 한다. 또 고래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으면 한 마을 사람들이 오랜 기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고래는 바다의 생활에서 안전과 식량을 담보해주는 바다의 신이었을 것이다. 호랑이는 어떤가? 이 세상 어디에서도 호랑이는 신성한 대접을 받는다. 호랑이는 사람을 위협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며 또 가죽이나 고기 등 사람들에게 유용한 자원을 제공해주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암각화에 새겨지는 동물들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신이나 마찬가지인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들도 많다. 사냥이나 어로작업 또는 제사를 드리는 모습 등이 새겨진 경우도 많이 있어서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살아있는 역사책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암각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암각화가 많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18세기나 19세기에도 이미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암각화의 연구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연대측정의 어려움이나 해석이 어려운 도형 등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암각화의 연대측정도 가속질량분광기(AMS)를 이용한 탄소연대측정 등 여러 가지 방법이 활용되고 있고 전 세계의 암각화 조사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세계암각화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반구대 암각화나 천전리 암각화의 연구에 이러한 과학적 방법이 바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구대 암각화 등 한국의 암각화도 앞으로 연구방법에서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열악한 상태나마 현재의 보존상태가 유지되지 못하고 훼손이 가속화되면 연구할 시기를 영영 놓치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암각화 연구는 본격적인 암각화 내용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보존에 대한 연구가 더 시급하며 내용의 연구와 함께 확실한 보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노력이 최대한 기울여져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서둘러 안한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와서도 안될 것이다. 

▲ 임세권 안동대 교수

사실 암각화의 보존 문제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몽골의 많은 암각화들은 깨트려져서 가축 우리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러시아나 미국에서도 많은 암각화들이 댐의 건설로 수몰되었다. 암각화가 일찍부터 알려진 유럽에서도 암각화의 훼손은 심각하여 암각화 유적을 소개하거나 또는 학술적 연구서 등에는 암각화 유적의 보존에 관한 내용이 하나의 장으로 설정되어 기술되어 있다. 이는 암각화 보존이 일반적 문화재 보존문제보다 훨씬 심각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암각화 박물관에는 보존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는 전시도 많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암각화 박물관도 새롭게 꾸며진다면 울산시민 그리고 한국 국민들이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서 노력한 과정이 전시되어 이곳을 찾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날을 기대한다.

임세권 안동대 교수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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