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산 원유 국내 직도입하자는 주장
수익상의 문제 등으로 사실상 불가능해
장기적 비축효과 있는 해외개발이 해답

▲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이라는 말이 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못하면 곧 아프다는 말인데 소통의 중요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근처럼 제대로 된 ‘소통’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체감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해와 오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소통 밖에 없음을 안다.

우리나라 해외석유개발사업에 대한 ‘불통(不通)’에 대해 필자는 우리 직원들을 포함해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이 해외석유개발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데, 그 오해를 풀어내는 것도 필자와 우리공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해외석유개발의 목적은 ‘안정적’으로 석유를 확보하는 것이다. 석유공사의 설립목적은 ‘수급안정 도모’, 해외자원개발사업법의 목적은 ‘자원확보의 장기적 안정성 제고’인데, 이것은 석유시장의 특성상 ‘돈을 주고도 석유를 구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언제든 올 수 있음을 가정한 것이다. 지난 1979년부터 약 4년간 이어진 제2차 석유위기부터 걸프전 사태,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공사는 국내외 사회적, 경제적 위기 상황 발생시 비축유 방출, 유가인상 충격 완화 등 국영석유사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비상시를 제외하고 언제든 해외생산원유를 국내에 직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들리곤 한다.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도 생산원유의 국내 도입량이 미미해 국내 석유수급과 유가안정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는 비판인데, 값싼 원유를 들여와 국내 정유사에게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이를 정제한 정유사들이 최종 소비자에게 석유제품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글로벌 석유환경과 석유개발 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

생산 원유의 직도입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국내외 우호적인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유종별 성상, 시황 등에 따라 변하는 유가가격, 수송거리(수송료) 등의 도입경제성을 감안했을 때 정유사들이 이를 감수하고 생산원유를 구매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또 들여온다 하더라도 국내에 반입하는 유종의 성상이 우리나라 정제시설 스펙과 맞아야 하는데, 정유사들의 시설과 수익을 최적화하면서 국내에 공급하려면 이 또한 수조원이 필요한 과정이 수반된다. 이렇게 되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인하로 이어지기도 어렵게 된다. 오히려 해외 생산 원유의 판매 수익금으로 국내 도입물량을 확보하면, 보다 경제적으로 ‘원유 공급 안정’이라는 목적에 달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가 에너지 안보를 지켜내는 석유개발사업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이는 장기적인 비축 효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공사가 해외석유개발사업을 통해 확보한 원유 매장량은 현재 13억3000만 배럴 규모인데, 이는 현지에서 수익을 창출하면서 장기적인 시장상황 악화에 유효하게 대응하고 안정적인 비축 효과를 가지고 있다. 시장에서 원유를 정상적으로 구매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매장량에 대한 지분권을 활용해서 국내에 도입할 수 있고, 자연재해나 오일쇼크 등 공급차질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신속하게 단기 전략비축량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공사는 울산, 거제, 여수 등 국내 9곳에서 국가안보시설인 원유 비축기지를 운영하며 1억600만 배럴의 원유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7%에 달하고 세계 여덟 번째 석유소비 대국인 우리나라에 석유안보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경제규모가 크고 석유소비는 많지만 석유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대형 석유기업의 존재 자체는 확실한 의미를 가진다. 유가는 요동치고 자원전쟁이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요즘, 해외석유개발사업이 가지는 중요한 명제에 대해 무리한 국내도입만을 외칠 것이 아닌 합리적인 정-반-합의 지혜를 모아 ‘통즉불통(通則不痛)’의 이해와 해결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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