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심에 인간이 아닌 물질이 있으면
외롭고 고독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어
주위 돌아보며 희망의 공간 만들어 보길

▲ 조현오 울산시티병원장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인생의 굽이굽이 마다 점철되었던 아찔한 순간들이 환등기 영상마냥 떠오른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사회이지만 매 순간 이웃과 경쟁하고 부딪히면서 상처를 주고 받았고 입을 악물고 악착같이 살았던 순간을 회상하면 몸서리칠 정도의 전율을 느낀다. 조금만 더 여유롭게 배려하고 살았더라면 풍요로운 인생을 맛 볼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으로 훈수를 들고 싶다.

삶의 타래를 풀어가는 데는 교육으로 단련된 지식보다는 단순한 생활의 지혜가 필요할 뿐인데 기죽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전투적 자세로 살아온 것 같다. 경쟁사회에서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과 욕심 그리고 상대적 비교가 삶의 방향을 헝클어 놓았다.

불교에서는 현세를 탐·진·치 즉 삼독에 저려진 고통의 바다라고 한다. 이는 어떠한 영향 보다도 스스로의 편협된 생각과 행동으로 세상사가 굴절되었기 때문이다. 욕심을 탐하고 화를 내고 어리석은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근시안적 태도가 올바른 자아를 마비시켜 타락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노자의 도덕경에 의하면 물건을 3가지 이상 소유하면 오히려 물건의 노예가 되어 자유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편의를 위하여 마련한 이기가 족쇄가 되어 행동이 제한 당하고 근심의 그림자가 눈앞을 가린다. 인간은 스스로의 인생을 그리지 못하고 타인이 엮어짠 그물에 억류되어 만족스럽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나를 위하여 살지 않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으로 포장되어 있다. 세상을 따라잡기 위하여 행복을 담보로 더 많은 욕심을 추구하느라 몸도 마음도 항상 피곤하다. 냉기류로 도배된 호화스러운 저택의 부자 보다는 오손도손 모여사는 가난한 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훨씬 훈훈하지 않은가.

천국이라고 과연 행복할까. 인간의 본성은 완벽에 안주하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목표가 없으면 삶이 지루하고 불편하다. 돈이 없어서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아서 타락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인간이 삶의 중심에 있어야 외롭지 않고 주위와 어울려 살 수 있지만 물질지향이 되면 고독하고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좋은 삶이란 타인과 조화로운 환경에서 꿈과 목표를 순차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조급할 이유도 없다.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고는 없다. 육신을 위하여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지만 결국 생로병사로서 나를 실망시키고 떠나게 된다. 내 육신도 내 것이 아닌데 내 가족이나 내 주위 어느 것도 마음대로 소유할 수는 없다. 주어진 삶에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정성을 다 한다면 영혼을 풍성하게 한다. 운다고 짜증부린다고 그리고 남과 싸운다고 모든 어려운 일이 풀린다면 심통도 부려보겠지만 그러하다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

내가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여 나보다 불우한 이웃이 쉴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 우리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다. 돌이켜 보면 이 세상은 고마움과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보다는 간단한 전투복을 입은 몽골 기병이 자유스럽고 발걸음도 가볍다. 행복을 찾아 너무 멀리 떠났다.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단순한 삶이 바로 천국이었는데.

조현오 울산시티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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