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본질 흐리기…29일 의회 합동연설도 기대 난망

미국 공식 방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사 인식은 ‘역시나’였다.

미국 의회와 언론, 학계, 한인단체에 이르기까지 미국 조야에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하라는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이렇다할 태도변화가 엿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마이동풍’식 행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공개적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방미 이튿날인 27일(이하 현지시간) 하버드대 학생들과 만난 아베 총리는 위안부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피해자’라고 표현하고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는 한달전인 워싱턴 포스트(WP)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밝현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기는 커녕 사안의 본질을 교묘히 흐리려는 ‘물타기’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인신매매’라는 표현 자체는 미국 국무부도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적용하고 있다. 2000년 발효된 ‘유엔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과 그 의정서(일명 팔레르모 의정서)가 국가의 개입과 강제성을 지닌 여성 착취행위를 인신매매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듯한 언행을 보여온 아베 총리가 주체와 목적을 거두절미한 채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미 국무부가 위안부 문제를 “성(性)을 목적으로 한 일본군의 여성 인신매매로서 끔찍하고 극악한 인권 침해”(the trafficking of women for sexual purposes by the Japanese military during World War II was a terrible, egregious violation of human rights)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얘기다.

특히 아베 정권은 지금껏 위안부를 동원한 주체가 민간업자들이었고 심지어 조선인들이 가담했다는 억지 주장을 펴왔다. 일본제국주의 군대, 즉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강제동원한 사실이 없다고 부정해온 것이다.

아베 총리가 가슴 아프다‘(my heart aches)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마치 가해자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어 ’사과와 반성‘(apology and remorse)과는 거리가 먼 것임은 물론이다.

노다 요시히코 민주당 내각은 2012년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아베 정권은 이를 삭제하고 ’깊이 고통을 느낀다‘(deeply pained)라는 어정쩡한 표현으로 대체했다.

아베 총리가 이날 위안부에 대한 ’광의의 강제동원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되풀이했지만,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29일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연설에 대해서도 아예 기대를 접는 게 낫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과거 태평양 전쟁의 당사자였던 미국에는 사과하겠지만, 한국과 중국 등 일제의 식민 지배와 침략의 대상이었던 주변국들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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