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기다림이다.
봄이 되면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봄이 대지에만 찾아들까?
뱃길 따라 어디를 가면
봄 기운을 맡을 수 있을까?
보석보다 찬란한 옥빛으로
반짝이는 봄바다에
흠뻑 취하고 싶은 계절이다.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기면서
재미를 더해줄 것 같은 곳,
경남 통영의 ‘환상의 섬’
사량도가 떠오른다.
사량도 지리산은
인기 명산 25위에 올라있고,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이기도 하다. 
 

▲ 사량도 지리산에 올라 암봉, 고암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바다와 섬들을 조망하는 쫄깃한 맛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능선을 타는 재미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하다.

갯가의 비릿한 바닷내음이 물씬 풍기는 통영 가오치항 사량호 부두. 아침 일찍부터 배를 기다리는 등산객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기 시작한다. 시골역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듯 일행들의 대화소리로 왁자지껄하다. 지난해부터 다소 엄격해진 탑승 수속을 마친 뒤 배에 올라타 그리움을 향해 항해한다.

김춘수(金春洙)의 시 ‘봄바다’를 떠올려 본다.

毛髮(모발)을 날리며 오랜만에
바다를 바라고 섰다.
눈보라도 걷히고
저 멀리 물거품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人間의 女子가
誕生(탄생)하는 것을 본다.

뱃고동이 울린 지 40여분 지나 사량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섬마을 버스가 대기중이다. 사량도의 옛 이름은 박도(樸島)였다. 상도와 하도 사이를 가로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뱀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형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옥녀의 설화에서 유래되어 사랑(愛)이 사량(蛇梁)으로 변천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사량도로 지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사량도는 기암괴석으로 덮여있는 섬 해안의 돌출부가 하나같이 뱀처럼 생겼고, 실제로도 섬에 뱀이 많다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사연이 궁금해지는
지리산·달바위·가마봉·옥녀봉…
숨가쁘게 암릉 오르다 고개 돌리면
반짝이는 쪽빛 바다 장관에 압도
여객선 타고 오가는 길목에서
토끼섬 등 한려수도 풍광 감상하고
고된 산행에 지친 하루 마무리로
무한리필 다찌집 들러 해산물 맛보길

돈지로 이동한다. 돈지마을 앞에는 멸치잡이 배가 많다. 돈지를 출발해 지리산(398m), 달바위(불모산, 400m), 가마봉(303m), 옥녀봉(281m)을 거쳐 선착장으로 되돌아오는 대략 6.5㎞ 코스를 타기로 했다. 지리산이나 옥녀봉 만을 오를 수도 있고, 지리산부터 옥녀봉까지 종주할 수 있다. 거의 해발 400m가 채 되지 않지만 지리산, 달바위, 가마봉, 옥녀봉은 이름만 들어도 온갖 사연이 숨어있을 것같다. 지리산은 맑은 날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이 바라보인다 해서 지이망산(智異望山) 또는 지리망산으로 불리다가 지리산이 되었다. 국립공원 지리산과 구분하기 위해 사량도 지리산이라 부른다.  

▲ 여객선 꽁무니를 따르는 갈매기들의 날갯짓은 한려수도 바다의 평화로움을 전해준다.

사량도 지리산은 돈지 산행길 들머리에서 금세 도착한다. 봄빛 바다, 은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 같은 바다. 그 바다를 곁으로 눈맞춤하며 지리산을 오른다. 잠시 땀을 훔친 뒤 발걸음을 재촉하다보면 산은 점점 칼산으로 변해간다. 수직으로 뾰족한 특유한 절벽이 기다리고 있고 가쁜 숨을 쉬면서 불쑥 봉우리를 올라선다. 암릉을 따라 불모산 정상에 올라선다. ‘달바위 400m’라는 표석이 있는 불모산 정상은 사량도 최고봉이다. 나무가 없어 고려 때부터 ‘不毛’(불모)라는 한자명을 갖게 됐다고 한다. 불모산 암벽을 올라 암릉에 올라서면 가마봉까지 다시 암봉을 넘어야 한다. 칼날 같은 톱니바위를 넘어서면 가마봉 오름길. 암봉, 고암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다소 험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능선을 타는 재미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쫄깃하다.

지리산에서 옥녀봉에 이르기까지 구간에는 20여m 정도 되는 수직에 가까운 철 사다리 2개가 있다. 예전에는 밧줄로 오르내리던 구간에 철계단이 설치돼 있어도 아찔하긴 마찬가지다. 밧줄 타고 오르기, 수직 로프 사다리 앞에서 잠시나마 움찔한다. 기초 유격훈련을 받던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릴법 했다. 어느새 다도해는 바로 곁에 와있고 그러다 언뜻 산길을 돌면 옹기종기 섬들이 바짝 다가와 있다. 배를 타고오면서 보았던 초록빛 바다는 쪽빛바다로 변해 있고, 바다내음을 이제는 기분좋게 흡입한다. 그 느낌은 산행길 초입의 논둑길 밭둑길에서 자라는 쑥보다 더 상큼하다. 산을 오르면서 번잡한 세상사를 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옥녀봉은 산봉우리 형상이 여인의 가슴을 닮았을 뿐 아니라 그 산세가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듯한 옥녀탄금형을 이루었다는 풍수지리설이 있다. 또 비극적인 전설을 간직한 옥녀 설화도 남아있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아주 먼 옛날에 옥녀라는 어여쁜 딸을 둔 홀아비가 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욕정에 눈이 먼 아버지가 딸에게 덤벼들어 욕정을 채우려고 했다. 딸은 부녀지간의 천륜을 거역할 수 없다며 아버지를 설득했으나, 이성을 잃은 뒤라 딸은 아버지에게 산 밑으로 가서 “음메 음메” 소 울음소리를 내면서 기어오라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딸이 시키는 대로 천륜을 저버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아비를 피해 옥녀는 결국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드문 부녀 근친상간의 비극적인 전설이 아닐 수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옥녀가 떨어질 때 마지막까지 옥녀를 붙들었다는 붙들 바위, 옥녀가 떨어져 죽은 자리에는 핏자국 같은 붉은 이끼가 덮여 있었다.

사량도는 아랫섬과 윗섬 두 섬으로 나뉘며 지리산은 윗섬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그 자체로 종주코스다. 스릴이 연이어지는 공포감과 산 안팎의 풍광이 모두 뛰어나 그 재미가 적절히 섞여있다. 옥녀봉을 마주하고 있는 아랫섬의 칠현봉은 7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아기자기한 산세로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몇년전에는 향봉과 연지봉 일원에 보도 현수교 일명 출렁다리가 설치됐다. 출렁다리 일원에 안내표지판과 이정표가 세워졌고 등산객들이 추억을 담아 갈 수 있는 출렁다리 포토존도 마련됐다. 그러나 산행 코스중에 달바위는 다소 위험한 코스다. 사량도 지리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변수가 많아 안전에 항상 유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산만 끼고 걷는 산행보다 바다와 섬들을 조망하는 산행은 새로운 맛이다. 사량도 여객선을 타고 오갈때 배꼬리에 따라붙는 갈매기들의 군무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객선과 이별과 상봉의 길에서 만난 갈매기 소리가 끼룩끼룩 울어대지만 처량하지가 않다. 또 유방섬, 토끼섬, 부채섬 등 한려수도 바다 위에 점점히 떠 있는 섬들은 훌륭한 조연이 된다.

애주가라면 통영 선착장으로 되돌아왔을 때 3~4명정도 짝을 지어 다찌집이라도 찾아보자. 통영 다찌의 안주는 거의 요리하지 않은 상태의 요리가 대부분이다. 술값은 조금 비싸게 받는듯 하지만 안주를 무한리필 해준다. 풍부한 해산물 요리로 피로를 풀거나 시원한 물회로 저녁을 먹고나면 험난했던 하루 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글·사진=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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