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타 설정할 정신적 지주 없어서
갈등·반목으로 어수선한 대한민국
멘토 역할 해줄 사회 지도층 있어야

▲ 전상귀 법무법인 현재 대표 변호사

5월은 뜻 깊은 기념일이 많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 개인, 가족, 사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되새김을 해보자는 뜻이리라. 외교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방위협약으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중국경제의 부상으로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국내로는 국무총리 임명과 사퇴가 매끄럽지 못하고, 세월호를 둘러싼 갈등이 있고, 국가의 부가 몇몇 재벌기업에 편중되어 대기업의 성쇠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지역주의에 기대는 선거행태가 있고, 가정은 가장의 존재감 저하로 해체의 위기를 겪으며, 개인들은 도덕보다는 물질만능에 휩싸여 부의 축적이 성공의 잣대로 점쳐지고 있다.

상황이 이리도 어수선한데도 이를 조율하고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방향타를 설정하여 줄 사회의 지도층이 부재하다. 최근 영국 왕실에 왕가의 손녀가 태어남에 대한 영국 국민의 환호를 보았다. 필자는 왕조의 건설을 반대하고 세습적인 신분에 의하여 자손들의 생활이 규정되는 것은 반대한다. 그렇지만, 마그나카르타 이후 민주주의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영국에서 왕실이 사랑과 존중을 받고 ‘여왕이여 영원하라’(God bless our gracious Queen)라고 노래 부르는 분위기가 부럽다.

우리나라는 5000년 역사로 기억되는 아주 훌륭한 정신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 우리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갈등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에 생긴 독립파와 친일파의 갈등, 남북분단으로 인한 갈등, 선거에 악용되어지는 지역간의 갈등조장, 불균형적인 경제성장모델로 고착되어가는 부익부빈익빈, 최근 불거지고 있는 연금제도와 관련하여 세대간의 갈등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조선조의 유교적 사조가 없어지고 급격한 무비판적 서구문화 추종과 사회변혁을 너무 빨리 경험하고 있다.

필자가 10살 즈음에 선친께서 손님을 사랑방에서 맞을 때 배석을 하게 하였다. 어른들과의 대화 청취를 통하여 공부를 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 대화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다만 자리의 배치와 행동거지의 되돌아 봄에 대하여 배웠다. 1970년대 엄격한 가장인 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으므로 필자는 대화가 끝날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시절에는 집안의 가장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가족의 구성원은 가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 가장이 주목을 받던 가정에서 텔레비전이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시절의 권위주의가 옳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장 대신에 텔레비전의 말초적인 상업성에 가장을 빼앗긴 것이 아쉽다. 바보상자가 소중한 자존감의 원천을 밀어낸 꼴이 아닌가.

필자가 7살 되던 해에 모친은 시골동네에서 행동거지가 방정한 두 살 많은 두 명의 형을 선정하여 필자를 보살펴주라고 하였다. 모친은 그 형들에게 가끔 먹거리를 사주었고 필자는 그 형들을 따라다니면서 모범적인 행동을 본 받았다. 그 시절 시골마을에서는 세배를 다닐 정도였으므로 멘토행위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웃간의 유대관계는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주차문제와 층간소음 문제로 사람이 상했다는 뉴스를 듣고 가난했지만 서로 도왔던 이웃이 있던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다시 자애롭고 자유로운 가정의 재생과 유기적인 이웃의 회복을 갈망하고 그 기반으로 국가가 번영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사랑방에서 대화를 나누던 어른들과 어린 필자의 멘토처럼 작은 것에 소홀하지 않고 큰 것에 흐름을 잃지 않는 존경받는 지도층의 도래를 희망한다.

전상귀 법무법인 현재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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