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선율 반복연주…단순함으로 완벽함 추구

▲ 도널드 저드, 무제, 1980, 도금된 알루미늄, 239x61x69, 국립현대미술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문학,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회화와 조각 등에서는 대상의 본질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경향으로 나타났으며,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여 단순한 도형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기존의 그림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미니멀리즘은 추상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대표적인 화가로 도널드 저드, 프랭크 스텔라와 조각가인 칼 안드레 등이 있다.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소재와 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타났으며, 패션에도 장식적인 디자인을 제거한 심플한 디자인, 최소한의 옷으로 훌륭한 옷차림을 연출하는 방법 등이 모두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에 있어서도 경제 원칙을 추구하여, 작가들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어휘나 문장 구조, 작중 인물 등도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즉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때론 기승전결이 없는 경우도 많으며, 언어보다는 침묵을 사용한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 속에는 침묵(……)이 곳곳에 나타나 독자들로 하여금 그 여백을 상상하도록 하고 있다.

미니멀리즘 연극은 대본과 연출에서 극적 효과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축소시킨다. 연출가 윌슨은 언어를 통한 의미 전달보다는 이미지를 통한 의미 전달을 꾀하였는데 이것은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소리, 동작, 시각적 이미지들을 활용한 추상적인 공연들이었고, 대중화된 팬터마임은 대사가 따르지 않는 묵시적 몸놀림만으로 갖가지 행위라든가 감정, 정서, 정경 등을 표현한다.

이외에도 미니멀리즘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만을 주장하는 금욕주의 철학, 복잡한 의식을 없애고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종교적인 흐름 등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음악에서의 미니멀리즘은 복잡한 화성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음악적 재료를 사용하여 짧고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을 끝없이 반복, 변형시키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즉 극히 짧은 선율의 한 패턴을 몇 번이고 반복 연주하면서 점차 원래의 선율을 조금 변형시킨 패턴으로 이행시켜 나가는데, 이렇게 연주가 중첩되면 선율과 선율 사이에 갖가지 엇갈림이 생겨 마치 청각적인 모아레(moire:얼룩)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이 기법은 다양한 변화를 가져와 현재는 대중음악이나 록음악, 영화음악 등 현대음악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음악가는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존 애덤스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그 중에 필립 글라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 김정호 울산예술고 교감 울산음악협회 회장

필립 글라스의 음악은 짧은 선율 조각이 조금씩 변해가며 반복된다. 라이히가 리듬 위주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글래스는 선율 위주의 변화를 중시하였다. 그리고 미니멀리즘 음악을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장본인으로 대규모의 극장 음악에 미니멀리즘을 접목시켰다. 현존하는 현대 작곡가 중에서는 제일 잘 알려진 사람으로 방송, 영화 등의 출연 사례도 많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수학 및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줄리어드에서 작곡으로 전향하여 여러 작곡상도 수상하였다. 한 때 쇤베르크 등의 12음 기법이나 피에르 불레즈 등의 현대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비서구권 음악인 인도 음악의 특징을 자신의 음악어법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미니멀리즘 운동에 영향을 받아 관련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1976년 아비뇽에서 초연된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4막짜리 오페라로 총 공연시간이 무려 다섯 시간이 넘어가는 대작이다. 이 오페라에 어떤 스토리가 있고, 등장인물이 연기를 펼치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무대 한 쪽에서 바이올린을 잠시 연주하는 게 전부다. 가수들은 숫자와 “도레미”를 읊는다. 이 작품의 주제는 아인슈타인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내용인데, 이 작품이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글래스의 명성을 한껏 드높인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감상해보면 좋겠다.

“완벽함이란, 더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단순함으로 완벽함을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추천음반
-Philip Glass - Einstein On The Beach(1993)
The Philip Glass Ensemble
Michael Riesman, conductor

김정호 울산예술고 교감 울산음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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