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독일 금속업계 신임금체계 ‘ERA’

▲ 독일의 신임금협약인 ERA는 IG메탈(금속노조)과 사용자협의회의 10여년간의 준비에 걸쳐 도입됐다. 프랑크푸르트 금속노조본부 전경.

독일 금속산업에선 몇년간을 근무했느냐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5년까지만 경력으로 인정해 준다. 연공서열식 임금구조를 가진 한국과 달리 경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임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어떤 일을 하느냐다. 10년을 일했건 40년을 일했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서 용접일을 하는 A씨는 2년 과정의 직업훈련을 수료했고, 3년의 현장경력이 있다. 단순업무와 정해진 목표에서 지시가 가능하다. 그는 회사 평가기준에 의해 총점 23점, 7등급을 부여받았다. 월 기본급은 2963유로로 정해졌다. 중소기업에서 A씨와 동일한 조건에서 같은 일을 하는 B씨 역시 월 기본급은 2963유로다. 일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존중하는 독일의 임금체계 ERA(신임금구조협약)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A씨나 B씨가 임금을 더 받기 위해선 지금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상위 등급의 업무를 맡아야 한다.

일의 가치 따라 기본급 정한
독일의 신임금구조협약
10여년 준비기간 거쳐 도입
노사 함께 평가기준 만들어
등급별로 같은 임금체계 적용
공정한 평가로 차별없는 임금
근로자도 사용자도 만족

◇10여년의 준비기간 걸쳐 도입된 ERA

ERA는 사무직과 생산직의 임금 불평등 문제와 과거 만들어진 임금체계를 현 시대에 적용함에 따른 어려움, 자동화 기술 도입에 따른 업무 조정 등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독일 금속분야에서 2000년대 초반 도입됐다.

ERA가 가장 먼저 도입된 지역은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 등이 위치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다. 이 곳은 독일에서 두 번째로 근로자들이 많은 주이자 지난해 기준 49만2000명의 근로자가 있는 곳이다. 

 

이 지역 IG메탈(금속노조)과 사용자협의회는 1989년부터 독일 임금구조 개선을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주요 쟁점은 직무평가 기준 수립, 일의 가치 절상·절하에 따른 대책, 비용문제 등이었다.

10여년의 논의과정을 거쳐 2003년 6월 협상을 타결했고, 이후 순차적으로 다른 주에도 ERA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시작된 ERA의 큰 틀이 유지되면서도 각 주별 지역적 특성에 맞는 세부 기준이 수립됐다.

핵심은 일의 가치에 따라 기본급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차이가 상당한 한국의 입장에서 섣불리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지만 독일에선 어느 기업에서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 같은 기본급이 책정된다. 변동성 급여로 지급되는 능률급(성과급)과 이윤배분액 때문에 임금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고정급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생활 안정이 보장되는 특성이 있다.

◇공정한 평가로 근로자·사용자 대체로 만족

ERA의 평가기준은 △지식과 능력 △사고력 △재량권·책임 △의사소통 △관리능력 등 5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지식과 능력에서 근로자들의 속성훈련과 학력, 경력을 평가한다. 경력은 보통 1년 단위로 최대 5년까지만 인정하는데, 이는 5년 이상의 경우 역량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고력에서는 단순 업무만 가능한지, 각종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 혁신적 사고를 가졌는지 등이 평가되고, 재량권에선 지시에 따른 업무 가능, 업무시 대안적 행동 가능 등에 따라 등급이 나눠진다. 의사소통에선 협업이 필요한 업무 수행 능력 등이, 관리능력에선 업무 발굴 및 배분 등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노사가 함께 만든 각 항목에서 세분화된 기준에 의해 점수를 부여하는 구조인데,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올해 4월 기준 최저인 1등급 2192.50유로, 최고인 17등급 5526유로다. 등급별 최저­최고액은 같은 지역에선 동일하다.

IG메탈 본부 아네데 스췌그퓌 홍보담당은 “사무직, 생산직 등에 상관없이 근로자들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고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ERA협약”이라며 “자기계발을 통해 최저 등급에서 최대 등급으로도 올라갈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글=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사진=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튀빙겐대학교 노동기술문화연구소장-베르너 슈미트 박사
노동환경 변화로 직무급 필요성 제기
비효율 임금구조 개선해 ERA 도입
학력여부, 사무직-생산직 구분 없이
개인능력에 따라 임금기준 공평 적용
 

 

독일은 신임금협약인 ERA를 도입하기 이전 고학력자나 단순 숙련공에게도 많은 임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맡은 업무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인재가 많아지고 단순업무를 기계가 대신하는 등 노동환경 변화에 따라 당시 임금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 임금구조 전문가이자 튀빙겐대학 노동기술문화연구소장인 베르너 슈미트(사진) 박사는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학력이 높다는 이유로, 사무직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더 주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ERA 도입 논의도 시작됐다”며 “결국 직무급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베르너 슈미트 박사는 ERA를 도입한지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대로 정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ERA를 그대로 적용하면 약 54%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이 임금삭감을 경험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근로자 임금 삭감을 막는 동시에 사용자의 비용중립성을 지키는 합의가 이뤄지면서 반발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와 달리 생산직일지라도 자기계발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최저 1등급으로 입사했을지라도 능력을 인정받아 최고인 17등급(공장장 수준)으로 퇴직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설정된 기준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유지되다보니 근로자와 사용자들 입장에서도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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