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7천년 전의 퀴즈 반구대암각화

현재보다 상류에 형성된 해안선
시기 따라 달라지는 동물 비율 등
암각화 속 여러 힌트 조합해 보면
잔잔한 울산 내만에 가득한 고래
상류로 몰아 좌초시켜 사냥 추정
 

 

▲ 반구대암각화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암호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숨은 열쇠 찾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우리를 수천 년 전의 세상으로 데리고 가서 해리포터를 읽는 것 같은 행복을 줄 것이다.

암각화는 바위에 도구를 가지고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자가 없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기록한 글일 것이다. 그림은 어쩌면 최초의 글자이다. 문자가 없던 때였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바위면 밖에 없었으므로 암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짧은 기간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세대들이 각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겨야 하므로 기록을 하는데 있어서 원칙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와 같은 그들의 암호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1799년 로제타스톤이 발견되고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1822년 이집트의 고대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 문자를 해독할 때까지 고대 이집트의 방대한 기록은 그냥 의미를 가지고 있는 미해독 암호에 지나지 않았다. 로제타스톤에는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기원전 196년에 내린 칙령을 세 가지 문자로 기록하였으므로,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어를 열쇠로 발견된 지 20년 후 해독되었다.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에 기록되었으므로 열쇠를 찾을 수 없어서 이런 기적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암각화 내용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의도를 읽어야 한다. 

▲ 7000년 전의 고대 울산만(古蔚山灣) 지형도.

반구대암각화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이 수수께끼를 풀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아직 이 퀴즈를 완전히 다 푼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사실을 밝혔다. 우선 지난 수만 년 동안 지구의 해수면이 상당히 역동적으로 변하였으며, 어떻게 변하였는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면서 울산지역의 환경변화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울산지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스토리를 만들어 볼 수 있게 되었다.

7000년 전 울산 태화강은 굴화, 구영 부근까지 바다였다. 우리나라 여러 해안에서 확인된 당시 해수면의 고도가 거의 현재 수준이었으므로 울산에서도 바닷물의 높이는 현재와 비슷하였다. 그러나 해안선은 현재보다 훨씬 더 상류 방향으로 들어와 구영리 부근까지 전진하였다.

이 장면은 반구대암각화 암호를 해독하는 제1의 열쇠이다. 당시 사람들은 아마도 수천 년 후에 이 땅의 후손들이 이 정도 문제는 쉽게 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이 열쇠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각과 의도를 후손들이 읽기 시작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추리소설 작가들은 이야기 속 곳곳에 열쇠를 숨겨둔다.

그러면 제2의 열쇠는 무엇일까. 이것은 보다 큰 시야로 암각화를 해석해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것은 그림의 내용이 변한다는 것이다. 암각화는 제작한 시기에 따라 바다에 사는 동물과 육지에 사는 동물의 비율이 달라진다. 반구대암각화는 대충 기록한 내용이 아니다. 엄밀한 계획을 가지고 함축적으로 암호화하지 않으면 이런 암벽이 수십 개도 모자랄 만큼 방대한 시간의 기록이다. 최초의 기록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바다동물의 비율은 감소한다. 그들은 극사실적인 표현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마음만 먹었다면 태화강 하류부의 풍경을 그릴 수도 있으나, 이런 묘사는 함축적인 암호가 아니며 그릴 공간도 부족하였을 것이다. 문자도 약속된 기호이며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암호이다.

두 번째 열쇠를 열면 지형 경관의 변화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해수면이 현재 수준에서 거의 변하지 않는데, 태화강은 상류부의 하상과 신불산 운문산과 같은 높은 산지로부터 엄청난 양의 자갈과 모래를 운반하여 태화강의 바닥을 메우고 해안선을 바다 방향으로 밀어낸다. 특히 현재 울산의 신시가지가 입지하고 있는 삼산들을 비롯한 현재 태화강 하류부 남쪽지역은 당시에는 바다였는데, 하천이 가져온 모래로 이 바다를 메워서 수심을 얕게 하였다. 그래서 거의 3000년 전 께에는 대단히 얕은 바다가 되었다. 7000년 전부터 3000년 전까지 지형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열쇠를 이렇게 암각화 속에 숨겨둔 것이다.

마지막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고래잡이로 생계를 꾸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산지에서 수렵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다만 고래잡이를 하였던 까마득한 옛날 자신들 조상의 전통을 되살리는 축제와 같은 특별한 의식을 위해 포경을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래잡이가 그들의 계산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의 고래잡이 방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암호를 해독해야 한다. 그들은 세 번째 암호를 암각화 곳곳에 숨겨 두었다. 암각화에서 제법 잘 보이게 하였으나, 다만 상상력을 통해 내용을 잘 해석하여야 한다.

우리는 고래잡이가 금지되기 이전 근대 포경방식을 다큐멘터리 또는 책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포경업자들은 거대한 포경선을 타고 대포로 쏘는 작살 등 무시무시한 도구와 기계를 이용하여 엄청난 수의 고래를 잡았으며 기술을 얻고 고기를 획득하였다. 한편 기술 수준이 낮은 시기의 고래잡이에 대한 정보는 극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나 적도 부근의 주민들의 사례를 통해 얻고, 이것으로 신석기시대 울산지역의 포경 방식을 유추하고 있다. 그러나 울산은 극지나 적도가 아니며, 대단히 독특한 지형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울산은 아직도 마지막 빙기에 깊게 파인 침식곡이 태화강과 동천이 가져온 모래들로 다 메워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만든 제품들은 방어진에서 서쪽으로 들어간 내만인 울산본항에서 선적되고 있다.

첫 번째 열쇠로 본 것을 다시 상기하면, 신석기시대 삼산들, 신정동, 달동을 비롯하여 울산의 구시가지를 제외한 울산평야는 수심이 15~30m에 이르는 얕은 바다였다. 한반도 남쪽의 이 내만은 거울 같이 조용하고 따뜻하며 햇빛이 바닥까지 비추므로 해초가 밀림을 이루어 먹이로 가득찬 천국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고래가 이 내만에 왔을까. 어떤 시기에는 고래로 가득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많은 고래를 두고 왜 먼 바다로 나가는 극지방이나 적도의 고래잡이를 생각해야 할까.

일본인들이 울산에 포경 기지를 설치하고 근대적인 기술을 구사하기 이전에 이루어진 장생포의 고래잡이는 세 번째 열쇠로 문을 열어 보면 보이는 광경과 같았을 것이다. 장생포 사람들은 강으로 들어서는 고래를 상류 방향으로 몰아간다. 음향에 예민한 특성을 잘 이해하여 수심이 얕은 곳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래가 마침내 좌초하게 되고 움쩍달싹 못하는 이 거대한 동물이 자신의 체중에 의해 질식하도록 기다리거나 또는 창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급소에 타격을 가해 잡았을 것이다. 암각화를 만든 사람들도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고래를 잡았을 것이다. 태화강을 거슬러 자신들이 살던 곳 부근까지 고래를 몰아가면 거대한 고래는 돌아서서 도망치지 못하고 수심이 얕은 곳으로 거슬러 가다가 마침내 얕은 곳에서 좌초되고 말았을 것이다.  

▲ 황상일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반구대암각화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암호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참으로 대단한 퀴즈를 내고는 하늘나라 어디에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는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퀴즈는 어려워야 제 맛이다. 미국 부호 랜던 클레이가 세운 클레이 수학 연구소는 2000년 세계 7대 수학 난제(밀레니엄 문제)에 대해 700만 달러의 상금을 제시하였다. 이 가운데 ‘푸앙카레 추론을 푼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의 삶과 이집트의 고대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 문자를 해독을 위해 로제타스톤 연구결과를 먼저 발표하기 위해 경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에 큰 즐거움을 준다.

반구대암각화에 숨은 열쇠 찾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우리를 수천 년 전의 세상으로 데리고 가서 해리포터를 읽는 것 같은 행복을 줄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선사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현대인들보다 지능이 낮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퀴즈를 만든 사람들은 대단한 천재들 이었다.

황상일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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