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은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가정교육 통해 꾸준히 형성되는 것
벼락치기식 교육으로 기를 수 없어

▲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앵그리맘’(angry mom)이 박수를 받고 있다. 볼티모어 폭동에서 경찰에 항의하는 폭력시위에 동참하려는 16살 아들의 뺨을 때리면서 집으로 데려갔던 싱글맘, 토야 그레이엄이 워싱턴포스트 등이 선정한 ‘올해의 엄마’로 뽑혔다. 또 최근엔 13살 딸이 SNS에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사진을 올린 걸 발견한 엄마가 딸을 적나라하게 꾸짖는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그녀에게 찬사와 격려가 쏟아진 것이다.

미국의 앵그리맘이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던 필자는 배우 김희선씨의 사진으로 가득찬 걸 발견했다. 왕년에 좀 놀았던 엄마가 딸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과 사학비리에 맞서 싸운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을 그린 드라마가 ‘앵그리맘’이었고, 주인공이 김희선이었던 거다. 같은 검색어에 따라 나오는 내용이 한국과 미국에서 이렇게 판이하다니, 숨기고 싶은 우리의 현실을 웅변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엄부자모(嚴父慈母)가 있으니 뭐 괜찮다. 그런데… 흠… 과연 그럴까? 괜찮은 걸까?

며칠전 퇴근길 버스안이었다. 어떤 아저씨가 꾸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상대는 어떤 청년이었고, ‘발을 밟아놓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안하느냐!’는 그런 이야기였다. 상황파악을 해보니 버스에서 내리려고 출구로 다가서던 중 버스가 흔들리는 바람에 그 청년이 중년 남자의 발을 밟았던 것이다. 그 청년은 그 아저씨의 아들뻘 정도였지만 덩치가 컸고, 옆에는 여자친구인 듯한 아가씨도 같이 서있었다. 그런데 그 청춘남녀는 그 남자에게 아무런 대꾸도 안하고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중년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면서 분개하던 훈계는 웅얼웅얼 독백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곧이어 정류소에 도착했고, 그들은 함께 내렸다. 중년남자는 총총걸음으로, 무례한 그 청년은 느긋한 팔자걸음으로 뒤따라가는 풍경이 차창밖으로 펼쳐졌다. 누군가의 아버지일 그 중년남자에게 힘을 보태주는 한마디라도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됐다. 봉변당하기 전에 피해야 하는 대한민국 엄부(嚴父)의 알몸을 본 것 같아 안타깝고도 화가 났다.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또 요지경이다. 교육부에 ‘인성’을 이름붙인 과(課)가 생기고, 심지어 사교육시장도 인성교육에 후끈 몸이 달아올랐다. 교육계 전체가 인성을 향해 돌진할 모양새다. 여차하면 인성 함양에 유익한 교과 내용을 달달 외워야 한다고 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도대체 인성(人性)이란 무엇일까? 여태까지는 인성교육이 없었던 것일까?

필자는 인성을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고 정의하고 싶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자기자신의 문제가 아닌 이상은 ‘다른 사람’과 어떤 ‘일’에 얽힐 수밖에 없고, 이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성은 내용이 아니라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면 이러한 그릇은 언제 어떻게 빚어지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은 4살 이전까지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향후 그 아이가 맺어나갈 대인관계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부모의 영향력은 이어진다. 그게 바로 가정교육이다. 태도 또는 인성은 이렇게 가정에서 부모를 보고 들으면서 형성되어 가는 그릇이지, 어느 날 아이에게 주입해줄 수 있는 어떤 내용물이 아니다.

요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TV프로, ‘아빠를 부탁해’에서 이경규씨는 “아버지는 자기 일을 정말 열심히 하시던 분이다. 아버지에게 그런 점은 물려받았다. 재산보다 어떤 재능보다 더 좋은 것을 물려주셨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기 일을 정말 열심히 했던 아버지의 ‘태도’,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성교육이 아닐까?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