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천전리 암각화의 동심원 문양

▲ 천전리 암각화 곳곳에 새겨진 동심원 문양. 가운데 파여진 점을 중심으로 동심원 문양을 갈아파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하학적 도형들은 신앙의 대상
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풍작의 여신에 풍농 기원한 기호
동남아·북태평양 연안서도 발견

울주 천전리암각화는 태화강 상류에 위치한다. 반구대암각화에서 계곡 따라 약 1.5㎞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천전리암각화 또는 천전리서석으로 불려졌다. 천전리암각화는 선사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천전리서석은 세선각(細線刻) 그림과 함께 통일신라 시기의 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천전리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와 문양 구성에서 전혀 딴판이다. 물론 천전리암각화에도 동물 문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전리에는 주로 기하 문양이 중심이다.

기하 문양은 점, 선, 원, 네모, 세모, 마름모꼴 등을 말하는데, 이러한 기하 문양이 천전리 암벽에 가득 채워져 있다. 조각기법도 쪼아파기를 한 후에 갈아파기까지 보여준다. 조각기법은 천전리 인근에서 상당기간 거주하는 사람들이 새겼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천전리암각화의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들은 매우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유일한 기하문군을 이루고 있다. 문양이 추상적이라서 제작 연대 추정도 어려움이 따르고, 어떠한 집단들이 조각하였는가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어느 시기에 어떠한 사람들이 남긴 족적이냐를 추정할만한 단서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천전리암각화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가장 보편성을 띠는 동심원 문양을 통해 문화적 계통을 추적해 보자. 동심원 문양은 울주 천전리암각화 동심원, 대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입석의 동심원, 대구 천내리 고인돌 거석 동심원, 밀양 안인리 4호 고인돌 적석유구 동심원, 고령 양전동 알터 암각화 동심원, 함안 도항리 고분유적 동심원, 함경북도 무산 지초리 동심원 문양 등이 발견되었다. 대체로 동심원 문양이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의 덮개돌과 유구에서 발견되었다. 국내의 동심원 문양은 보통 2중, 3중 문양이 주류다. 천전리암각화와 도항리 유적에서는 다중동심원(多重同心圓)이 발견되었다. 다중동심원은 5중, 6중, 7중 동심원 문양을 말한다. 울주 천전리와 함안 도항리는 동남해안에 위치해 해양지리적 접근성이 비슷하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고, 태화강변 암벽에 조각된 점도 같다. 태화강은 울산만 방어진과 연결되어있는 하천으로서 강해문화(江海文化)의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다. 천전리암각화의 조각 주체는 울산만 방어진에서 태화강 상류에 올라가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조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천전리암각화의 문양이 다른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천전리암각화의 주체는 한시적인 기간에 천전리 일대 대곡천 주변에 거주하면서 조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울산만의 해역은 남동해안이다. 한반도 북쪽에서 리만한류가 연안항로를 따라 내려오고, 남쪽에서는 쿠로시오 한류의 한 지류가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울산만 해역까지 올라온다. 조류는 문화전파의 고속도로 기능을 한다. 반구대암각화의 고래 그림은 해양 수렵민들이 해양환경의 변화에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회유하면서 그 족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그러하듯이 천전리암각화의 기하학적 도형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동심원 암각화를 추적하여 천전리암각화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동심원 문양의 발자취를 해류와 연관시켜 보자. 대만 고웅현 남쪽 만산(萬山)에 동심원군(同心圓群)의 암각화가 위치한다. 만산의 복합적인 암각화군에는 다중동심원·동심반원·나선형·얼굴·물결·인형·뱀 문양 등 천전리암각화와 유사한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대만은 쿠로시오 난류의 경유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산 동심원군은 동남아시아 계통의 암각화와 연계성을 읽어볼 수 있는 곳이다. 동남아의 생업 환경은 벼농사로서 목축 수렵과는 동떨어진 생활 관습을 갖고 있다. 동남아는 2모작, 3모작의 벼농사 지대이다. 암각화는 생활상의 반영이다. 그리고 암각화는 집단의 사유세계가 반영되지만, 가장 절실한 소망 대상을 각화하는 게 암각화의 기본이다.

동심원은 기본적으로 하늘을 의미한다. 동심원 문양의 타원형 문양은 구름의 상징이기도 하다. 동심원 문양은 대로 나선형 문양으로 변형되어 제작되기도 한다. 동심원의 중심이 점을 먼저 찍고 그 다음에 원을 그리고 겹겹이 원을 그린다. 천전리 동심원 문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동심원 안의 점을 새겨넣고 하늘의 배꼽이요, 눈동자요, 씨앗이라고 인식하였다. 하늘의 씨앗이 계속 번식하여 풍작을 가져오기를 소망하는 뜻에서 동심원을 2중, 3중, 6중, 7중 등 다중동심원 문양을 조각한 것이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내려오면서 벼농사의 번식과 풍작은 현실적인 당면과제였으며, 풍작의 신은 여신으로 신앙되었다. 풍작의 동력은 강렬한 태양과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는 것인데, 하늘에 구름이 형성되어야 비가 내리기 때문에 하늘을 풍요의 여신이라고 인식하고 신앙하게 되었던 것이다.

천전리 동심원처럼 동심원 문양의 가운데 점(點)을 중심으로 동심원 문양을 갈아파기 한 모습이 선명한 것은 동심원 문양에 대한 기원 의례가 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비를 내려주는 것은 하늘 여신이라고 믿고, 기우제를 지내면서 동심원 문양을 갈아파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만산의 동심원군은 고산지대의 고산족이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천수답의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비는 최고의 신격이었음을 보여준다. 동심원과 타원형 등이 암각화에 묘사되어 있지만, 신석기시대 토기의 문양에서도 등장한다. 그만큼 하늘에서 태양의 영향과 비를 내리게 하는 하늘의 영향력은 중대한 신앙대상이었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도작문화권에 속한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 송화섭 한국암각화학회 회장·전주대학교 교수
그래서 태양과 구름과 비는 벼농사 농경민에게 동일한 절대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에서도 환웅이 운사(雲師), 우사(雨師), 풍백(風伯)을 거느렸다는 사실을 암각화에 대비해 본다면, 천전리암각화의 기하학적 도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운사, 우사, 풍백은 구름과 비와 바람을 관장하는 주술사였다. 주술사는 제사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한 명의 제사장이 풍작의 여신인 하늘 여신을 향해 기우제를 지낸 자취가 천전리 동심원 문양으로 해석된다. 천전리 동심원 문양과 함께 마름모 꼴과 타원형 문양도 모두가 하늘 여신과 관련이 있다. 음양오행 논리로 본다면 하늘은 남자요 땅을 여자라는 논리이지만, 이미 주역의 논리가 성립되기 이전 신석기시대에는 신화 성립의 전 단계이기에 기하학적 도형들은 신앙대상이었고, 그 기하학적 도형를 기호와 부호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천전리암각화는 신화 태동 이전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풍작의 여신에게 풍농 기원을 지낸 기호였고, 신부(神符)였다. 이러한 동심원 문양은 동남아에서도 발견되고, 미국 북태평양 연안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북태평양의 해상 기류는 시계 방향으로 환류하는 기류 시스템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 해류가 쿠로시오 해류(黑潮)다. 동남아의 동심원 문양이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상하면서 대만이나 한반도 남단을 경유하여 북태평양으로 빠져나간다. 울산 천전리암각화는 북태평양의 환류시스템에서 하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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