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번 마을버스가 헤진 바퀴 쉬어 가는 덕동마을 끄트머리 따가운 넝쿨 뻗어나가는 호박 이파리 아래 키 작은 잉글랜드 양화점이 심어져 있다 삼십 년 계절이 바뀌었어도 나이테도 없고 자라지도 않은 앵글 선반마다 싱싱하게 열려있는 가죽 신발 열매는 모양보다는 몸에 좋아야 한다고 믿는 김 노인은 꿀벌처럼 날개를 윙윙대는 선풍기 앞에서 신발보다 더 공을 들여 구두본을 닦는다 구두본 주인들은 이미 반 넘게 마지막 구두를 연기로 만들어 신고 마을을 떠났다 지쳐서 돌아오는 절름발이 뒤축도 많지 않아 시간이 많아진 김 노인이 뭉툭한 손으로 시멘트 바닥에 물을 뿌려 주고 있다 갈라진 바닥을 보면 잉글랜드 양화점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가죽 신발들이 고구마처럼 흙을 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조숙씨는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울산에 정착한 뒤 뒤늦게 문학에 정진, 지난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문예지와 신문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며 착실하게 자기세계를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