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온통 우울한 소식들 뿐이다. 불투명한 미래로 도전과 패기를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물가상승에 비례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잃고, 꿈마저 잃어버렸다는 3∼40대의 이야기까지".  모두가 기대한 21세기의 햇살과는 너무도 다른 빛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보다 몇 갑절 어려운 상황에서 꿈을 이루었노라는 50∼60대의 말을 들으며 작은 희망의 불빛을 본다.  처음 화장실 문제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참으로 깜깜했었다.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말도 모르느냐는 등. 그러나 해야한다는 사명감에,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매달렸더니 어느새 길이 보였다.  깨끗한 생활 문화 공간으로 달라져 가는 화장실을 그리며 마음속에 최선이라는 단어 만을 품고서 앞 뒤 돌아보지 않은 채 달려왔더니 어느새 화장실문화라는 말이 전 국민들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폐막식 전에 치러지는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한국의 황영조 선수, 폐막식을 지켜보던 모든 관중과 세계 60억 지구촌 모든 이의 눈들이 그에게 쏠린 순간, 황선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왜 일어나지 못했을까. 사력을다해 자기의 진액을 다 쏟아 부은 후 골인과 함께 온 몸의 기운이 모두 소진되어버린상태, 우리의 자랑스런 태극기를 들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힘차게 그라운드를한바퀴 돌며 KOREA를 외치고 싶었을 순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모습이 바로 최선을 다한 모습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쓰여진 수필을 읽으면서 "최선"이란 말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것이다.  그 동안 내가 스스로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최선이 있었던것이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것은 최선이 아닌 것이다. 최선은 언제나 한발 앞으로 다시 멀어져 가기 마련이다. 그 최선을 향해 또다시 뛰어야만한다. 조금의 힘이라도 있다면 그 힘이 다하는 순간에 이르러야 비로소 최선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영광된 자리라도 나아갈 수 없을만큼 힘을 죄다 쏟아낸 황영조처럼.  꿈이 있는 젊은이. 희망이 있는 중년, 배려를 받는 노년이 넘쳐나는 세상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 세상은 오로지 우리 모두의 노력만이 일구어낼 수 있는 결과이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사회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하더라도 투덜대도 있어서는 안된다. 자신 몫의 세상은 자신이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몸담고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할 때 새로운 우리의 꿈들이 피어날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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