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울산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발견과 암각화의 특징 및 의의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 대곡리 암각화 전경(탁본).

울주 천전리 암각화가 1970년 12월 24일에 최초로 발견된 다음해인 1971년 12월 25일. 이곳에서 약3㎞ 하류쪽인 대곡리에서 또다른 선사 암각화가 동국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단(단장 문명대)에 의해 발견되어 우리나라 선사미술 내지 선사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이 ‘ㄱ’자로 꺾어지는 곳에 강 바닥보다 한단계 높은 암반이 형성되었고 이 암반 위의 ‘ㄱ’자 바위면에 걸쳐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이처럼 원래는 강 바닥 보다 한단 높은 절벽면에 암각화를 새겼기 때문에 물에 잠기지 않았으나 1960년도에 울산공업용수인 사연댐을 건설하면서부터는 물 속에 잠기게 되었다. 심한 가뭄에는 암각화가 드러나기 때문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바위 면이 손상을 입는 동해(凍害)에 자주 노출되므로 보존상태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몇가닥 선과 점만으로 묘사했지만
생명력과 역동감이 표현되고 있는
최고 수준의 선사시대 사냥 미술
표현주의적 자연주의 양식의 백미
스웨덴 등에서도 유사 암각화 발견
북방문화권 전파에 의한 작품 추정

너비 약 10m, 높이 약 3m의 이 대곡리 암각화 주암면(主岩面)에는 갖가지 육상동물과 바다물고기, 그리고 사냥장면 등 200여 가지의 물상이 음각으로 가득히 새겨져 있다. 바다물고기는 고래 48점 외에 거북, 상어 등 총 75점 이상이다. 육지동물은 사슴 45점 외에 호랑이, 멧돼지, 토끼 등 총 88점 정도이다. 사냥하거나 춤추는 인물상 6점, 탈 2점, 울(柵) 4점, 그물 2점, 배 4척 등 약 200여점 이상의 물상이 조각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단일 암벽에 갖가지 암각화가 다종다양하게 새겨진 세계 유일의 예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작살맞은 고래.

이 가운데 인물상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 타고 고래잡이 하는 어부 등이다. 고래는 물뿜는 고래, 작살맞고 요동치는 고래 등 갖가지 종류의 고래 등이 표현되었다. 사슴의 경우도 거대한 뿔을 가진 사슴, 갓 돋아난 뿔을 가진 사슴, 뿔이 없는 암사슴, 새끼를 거느린 사슴, 새끼 밴 사슴 등 갖가지다. 호랑이 역시 으르렁대는 호랑이, 포효하는 듯한 호랑이, 새끼 밴 호랑이, 울에 빠진 호랑이 등이다. 멧돼지는 돌진하는 멧돼지, 교미하는 멧돼지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 호랑이(긴꼬리줄무늬상).

이들 물상들은 단순한 몇가닥 선과 점으로 묘사했지만 놀랍게도 살아 약동하는 생명력과 넘쳐흐르는 역동감이 표현되고 있어서 최고 수준의 선사시대 사냥미술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수법은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데는 과감하게 강조해 고래나 호랑이, 그리고 사슴의 특징이나 사냥 순간을 서슴없이 포착, 실감나게 표현하는 표현주의적 자연주의 양식의 미술이다. 가령 작살에 맞아 혼신의 힘으로 요동치는 고래의 긴장된 곡선과 작살의 날카로운 명쾌함이 조화되어 세련된 아름다움이자 양식화된 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물 뿜는 분수(噴水)나 작살 같은 각 고래의 특징을 표현한 것은 이 작가가 상징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들의 바람은 더 많은 고래를 날카로운 작살로 죽여 더 많은 양식을 얻었으면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상징으로 몸에 박혀있는 것으로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작살은 고래를 잡고자 하거나 또 잡혔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상징과 함께 이 작가는 실제로 고래잡이를 체험하였으므로 작살을 맞았을 때 고래가 발버둥치는 그 요점을 간결하면서도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징성과 생동감을 동시에 나타낸 미양식을 성공적으로 나타낸 표현주의적 자연주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특징은 생명력의 표현도 기하학적 도식으로 상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범이나 호랑이, 소들의 머리에서부터 꼬리 부분에 이르기까지 주욱 그어진 굵은 일직선은 이른바 생명선(生命線)이라 부르고 있는데, 살아있는 동물이나 죽어가는 사냥감(동물)의 생명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동물의 내장이나 표피(表皮)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점이다. 즉 동물의 창자나 간, 심장 등을 삼각, 원, 마름모꼴 같은 기하학적 무늬로 나타내고 있다. 이런 기법을 투시법 또는 X선 기법이라 말하고 있다시피 동물의 내부기관을 투시하는 방법으로 묘사하는 독특한 기법이다. 이 또한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때로는 협동사냥한 경우 분배하는 몫의 표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세 번째 특징은 생식과 풍요, 주술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왼쪽 상단의 춤추는 사람은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남성의 큼직한 성기와 짧은 꼬리를 단 특이한 모습이어서 이 인물의 성격을 상징하고 있는데 사냥이나 풍요를 기원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생식이나 풍요를 기원하는 암각화로서 멧돼지 모양의 동물이 교미하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것은 노르웨이 크래프티프스 암각화의 교미하는 순록과 흡사한 것으로 더 풍요로운 생식을 기원해서 나타낸 장면이다.

교미 과정이 끝나면 동물은 새끼를 배게 된다. 조각면의 중앙부 부근에 있는 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듯한 자세로 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호랑이는 새끼 밴 호랑이인데 아랫배가 삼각형처럼 불룩하게 튀어나온 모습이다. 이 부근에는 새끼를 거느리고 걸어가는 듯한 새끼 밴 사슴과 함께 생명의 번식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 문명대 반구대암각화 최초 발견자, 동국대 명예교수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

끝으로, 인간의 형태를 극도로 추상화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신적인 정신성을 상징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무기를 들고 사냥하는 인물이나 춤추는 무당, 두 팔을 좌우로 벌리고 있는 인물, 역삼각형 탈 등은 모두 추상적으로 도형화시키고 있는데 신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심, 이른바 샤먼적인 종교성의 발로로 이해되고 있다.

이들 암각화는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시베리아의 아무르강 유역, 내몽골이나 러시아,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암각화들과 우리의 암각화는 거의 흡사해서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흔히 북방문화권의 문화전파에 따라 만들어진 바위미술로 생각되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경로를 밝히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는 것도 이 암각화의 귀중한 특징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때 조성된 사냥미술인 동시에 식량의 원활한 수집과 번식과 풍요를 기원하는 원시 종교미술로서 우리나라 선사시대 미술 가운데 세계적인 걸작으로 이른바 국보 중의 국보로 높이 평가된다고 하겠다.

문명대 반구대암각화 최초 발견자, 동국대 명예교수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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