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반구대를 역사문화 공원으로

▲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 집청전 일대는 조선, 고려, 신라, 청동기, 선사시대, 공룡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유적이 모여 있는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2009년 2월에 발간한 <문화재의 공익적, 경제적 가치분석연구>는 창덕궁, 팔만대장경판, 종묘제례·제례악 등과 함께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조건부가치평가법(CVM)을 적용하여 측정하였다. 이 연구는 2008년 7월 당시 만 20세 이상, 연소득 1200만원 이상의 성인 남녀 2만186명을 모 집단으로 해 반구대암각화의 훼손 방지를 위해 소득세를 얼마나 더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전체 모집단이 평균적으로 연간 2만3664원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측정해 4926억원을 연간 편익, 그리고 154억원을 연간 비용으로 산정하였다. 따라서 편익 대비 비용의 비율은 32(4926/154)가 되어 엄청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전문가 높은 평가와 별개로
각석·암각화 이외 관광코스 부족
잘 보존된 환경 활용할 노력 필요
반구대 일대 순환하는 둘레길 조성
관련 역사·문화·시문학 등 배우고
명상·휴양할 수 있는 시설 추진을

이 연구의 한계는 첫째 반구대암각화의 훼손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편익으로 추정한 연간 4926억원까지 국민이 부담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같이 추정할 수 있을 지라도 매우 비현실적이다. 문화재는 비용과 상관 없이 필요에 따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둘째 천전리각석은 이같은 가치 측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얼마나 더 부담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반구대암각화를 문화재 차원을 넘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시장적 가치를 측정하여야 한다.

▲ 겸재 정선의 ‘반구대’ 그림과 실제 반구대 모습.

울산시의 울산관광정보 사이트에는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국보급 문화재로 안내하고 있으며 울주군의 관광명소 사이트에서도 문화유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들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들이 소비하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 무료로 누구나 관람할 수 있고 암각화박물관도 입장료가 없으므로 직접적인 경제적 수익은 전무하다. 물론 이것들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교통비, 식비 같은 간접적 수익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래도 미미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학자와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와는 별개로 관광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 관광은 잠깐 둘러보는 수준이다. ‘보고’ ‘먹고’ ‘즐기고’ ‘머물고’ 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이들이 가진 대외적 홍보효과와 관광객 유인효과를 잘 활용하여 실질적 관광수입 창출효과가 나타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두 개의 국보급 문화재는 반구대를 중심으로 남북 약 3㎞길이의 대곡천에 위치하고 있다.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태화강으로 흘러가는 대곡천은 예부터 풍광이 빼어났기에 칠곡천(七曲川), 구곡천(九曲川), 혹은 반계(磻溪) 등으로도 불렸다. 상류에 대곡댐, 하류에 사연댐이 설치됨에 따라 상당부분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지만 그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반구대는 다행히도 울산 12경의 하나로 건재하다. 요즘은 ‘반구대’라고 하면 ‘반구대암각화’를 주로 연상하는데 1971년에 발견되기 훨씬 전인 신라시대부터 반구대와 주변의 계곡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따라서 반구대 주변에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천전리각석에는 신라 법흥왕 12년(525년)에 찾아왔던 갈문왕의 애틋한 오누이 사랑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617~686)는 반구대 부근에 있었던 반고사에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였다. 고려말 포은 정몽주는 언양에서 귀양살이 하면서 반구대에 자주 들렀기에 후학들은 그를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고도 불렀다. 언양유림에서는 1712년에 반고(槃皐)서원을 건립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선생 세 선현을 모셨다. 지금의 반구서원은 이를 옮겨 지은 것이다. 최신기(崔信基, 1673~1737)가 지은 집청정(集淸亭)에서 280여명의 선비들이 쓴 390여편의 시들이 <집청정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최종겸(崔宗謙,1719~1792)은 반구대의 10개 절경 즉 집청정, 비래봉(飛來峯), 향로봉(香爐峯), 옥천동(玉泉洞), 포은대(圃隱臺), 선유대(仙遊臺), 관어석(觀魚石), 망선대(望仙臺), 완화계(浣花溪), 청몽루(淸夢樓)를 읊은 오언절구의 ‘반구십영(盤龜十詠)’을 남겼다. 이외에도 백련구곡가(白蓮九曲歌)와 반계구곡음(磻溪九曲吟) 등이 수려한 경관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17세기 조선후기의 화가인 겸재 정선은 반구(盤龜) 라는 제목의 산수화로서 반구대의 절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2001년 울산시에서 반구대암각화 주변을 관광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관련학계와 시민단체가 크게 반발하였다.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도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학술단체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암각화 유적과 주변 환경보전을 위한 사적공원 지정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암각화 중심의 축제 및 관광단지 개발 혹은 문화재 보전차원의 공원 조성은 지속가능한 관광자원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반구대를 중심으로 두 개의 문화재를 연결해 주는 대곡천과 주변 협곡 그리고 북으로는 대곡댐, 남으로는 사연댐을 아우르는 지역을 서쪽으로는 35번 국도, 남쪽으로는 24번 국도, 동서쪽으로는 지방도가 삼각형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 지역은 울산뿐만 아니라 타지역에서도 접근성은 좋지만 문화재와 상수원보호구역이라서 개발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같은 제약조건들을 역으로 활용하는 역발상적 접근이 필요하다. 수동적으로 환경을 보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잘 보존된 환경을 활용하는 적극적 접근방법을 모색하자.

▲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

시대의 화두가 힐링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슬로우 타운(Slow town) 조성사업이 여러 곳에서 경쟁적으로 진행 중이다. 차별화를 위해 시간이 느리게 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꾸로 가는 즉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고려, 신라, 청동기, 선사시대 그리고 공룡의 발자국이 찍혔던 1억년전으로 돌아가는 ‘백 투 히스토리 타운(Back-to-History Town)’을 조성하자. 기존의 선사시대 산책길에 추가해 1~2시간, 3~4시간 그리고 전체를 순환하는 둘레길을 추가하자. 관련된 역사, 문화, 시문학도 배우고 힐링·명상·휴양을 할 수 있는 시설을 환경친화적으로 조성해서 울산시민, 외지 관광객, 그리고 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자. 개발재원과 관련해서는 문화재청, 산림청 등과 협력하여 국립공원의 형태로 할 수도 있겠다. 반구대에는 학이 깃들었다는 학소대(鶴巢臺)와 학이 그려져 있는 화학암(畵鶴巖)이 있다. 학을 복원하여 반구대에서 볼 수 있게 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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