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현주 문화생활부 기자

“통일신라시대 1호 횡혈식석실분은 경주 기생 전화앵의 묘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발굴조사 전부터 그 진위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횡혈식석실분의 축조시기와 알려져 있는 전화앵의 생몰년대에 큰 차이가 있어 전화앵의 묘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9년 조사 후 2010년 발표된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발굴보고서 <제52집 울주 활천리 열백들 유적> 중 일부다.

2009년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가 이 묘를 발굴조사하던 당시, 전화앵에 대한 관심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울주문화원과 일부 단체에서 시작된 움직임에 이어 울주군까지 전화앵 성역화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고학적 결론으로는 전화앵의 묘가 확실히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역화사업은 멈추지 않았다. 묘역에는 ‘전(傳) 전화앵 묘’라는 표지가 세워졌고 이후 해마다 전화앵 추모예술제가 개최됐다. 지난 주에도 제14회 전화앵 제가 열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경주 남쪽 30리 열박령이 동도(東都)의 명기 전화앵이 묻힌 곳이다’라고 기록된만큼 그는 실존인물 임에 분명하다. 전화앵을 무용이나 연극, 그림, 조형물 등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켜 그를 역사적 인물로 기리는 일 자체는 매우 의미있다. 하지만 문화콘텐츠화 하기에 앞서 그가 후세 사람들이 기릴만한 어떤 행적을 남겼는지, 학술적·객관적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화앵이 성역화된다면 지역의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는 것은 물론 경제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전화앵 추모예술제 장소도 고려해봐야 한다. 만약에라도 훗날 그 묘 주인의 후손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해마다 열리는 추모예술제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될 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묘가 아니라고 밝혀지던 당시 전화앵을 문화콘텐츠화하는 것에 만족, 묘는 포기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추모제를 지내는 장소를 옮기거나 묘 옆에 새로운 기념비 또는 동상을 세워 그 곳에서 추모제를 지내는 방안이 검토돼야 할 것이다.

석현주 문화생활부 기자 hyunju02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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