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공공시설 - (3)문화시설

▲ 1966년 10월28일 울산문화원 기공식 장면. 서진길 울산예총 고문 제공

광역시 승격 이전 울산의 문화시설은 너무나 빈약했다. 문화시설이라면 1960년대에 건립된 울산문화원과 울산시립도서관, 그리고 광역시 승격 직전 완공된 울산문화예술회관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외의 민간 시설로는 울산시내에 있던 영화관 4곳과 방어진, 언양에 있던 영화관 정도가 시민의 문화생활에 그나마 기여하는 정도였다.

정부, 울산공업센터 지정하면서
문화도시 조성도 표방했지만
시립도서관 등 시설 대부분은
시민과 지역유지들 노력의 결실
울산문화 총본산 문화원 시작으로
문예회관·동헌·도서관 등 들어서

1962년 당시 정부는 2월3일의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이틀 앞둔 2월1일 오후 ‘울산공업센터 전모’를 발표했는데, 이 내용에는 정유, 석유화학, 비료, 종합제철 공장 건설을 포함해서 울산을 ‘대공업센터와 문화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울산을 공업단지로는 완성하였지만 끝내 이 땅에 질 높은 문화, 체육, 교육, 연구 시설 등을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갖추어진 관련 시설은 모두 울산시민과 지역유지, 울산시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 2008년 4월 촬영한 중구 북정동 동헌·울산초등·중부도서관 전경

먼저, 울산시민들에게 생소하기만 했던 ‘문화’를 알리고 생활 속에 자리잡게 만든 울산문화원(이하 문화원)을 돌아보자. 문화원은 1964년 6월27일 창립총회를 거쳐 같은 해 10월13일에 문화공보부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다. 초대 원장은 박영출, 부원장 김규현·박공업, 운영위원장으로는 고기업씨가 선출되었다. 이들은 1965년 1월에 울산문화센터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지를 물색하던 중 1966년 8월20일에 현재 남구문화원 위치의 1232평 규모 부지를 매입해서 울산시에 기증했다. 울산시는 이것을 인수해서 국고보조금 600만원과 지방유지들의 기부금 300만원, 울산시비 1030만 9000원을 보태 같은 해 10월28일 역사적인 울산문화센터 기공식을 가졌다. 문화원 건물은 건평 164평, 연건평 460평의 철근콘크리트 4층 규모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작은 건물이지만 건립 이후 한참동안 문화원 건물은 번영로와 삼산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일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했다.

▲ 2012년 1월 동헌 전경.

필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문화원에서 공부도 하고 책을 빌려 읽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전람회와 문화영화를 보러 단체로 찾았던 기억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문화원이 한 일로는 1968년에 학성공원에 ‘봄편지’ 노래비를 건립했고, 1985년에는 처용암이 바라보이는 남구 세죽 바닷가에 ‘처용가비’도 세웠다. 학생들의 글짓기대회와 사생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고, 시민대학 운영, 향토문화강좌도 열었다. <울산 울주향토사>, <울산문화재>, <울산지명사> 등 귀한 책도 펴냈다. 문자 그대로 울산문화의 총본산 역할을 충실하게 한 곳이 바로 문화원이었다.

1990년 울산에는 주목되는 움직임이 하나 있었다. 바로 태화강 일대를 개발해서 도시기능을 확충하려 한 ‘태화강 연안 종합개발’ 계획이다. 이 계획은 울산시가 장차 100만 도시, 직할시 승격을 위해 무거동 일대를 대학촌지구로 조성하는 등 신흥주택단지를 만들어 부도심 기능을 부여하며, 태화구획정리지구 남단 5만여 평의 녹지지구를 문화예술지구로 개발해서 종합문예회관·심포니홀·미술관·산업박물관 등을 건립하고 휴식공간도 조성하겠다는 야심차고 원대한 계획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예술지구는 지금의 태화강대공원부지로 생각된다. 아쉬운 것은 이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시장은 16대 안길현 시장으로 1989년 12월부터 1991년 1월까지가 임기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직전의 15대 곽만섭 시장(1988년 6월부터 임기 시작) 작품으로 보인다. 곽시장 재임시 울산시의 시정목표는 ‘70만 시민의 화합과 참여로 대 울산 건설’이었고, 방침으로는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개발’ 등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발표되기 수년 전부터 울산에서는 시민회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었다. 1981년 4월24일에 시민회관건립추진위원이 위촉되었는데 위원장은 고원준, 부위원장은 박영출 외 3명이었다. 1983년 12월6일에는 설계공모 공고가 있었고, 반년 후인 1984년 5월17일에 총 10점의 응모작품 중에 부산 일신설계안이 당선되었다. 바로 지금의 울산문화예술회관이다. 1984년 말에는 1만794평의 부지를 6억 2000만원에 매입하고 1986년 5월12일에 설계안에 대한 심의 등을 거쳐 기본설계가 최종 완료되었다.

문화예술회관은 설계 후 만5년이 지난 1991년에 착공해 1995년 10월5일에 개관했다. 당초 건축개요를 보면 부지는 1만 609평, 연건평 6649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다. 대강당은 3765평으로 1700석 규모이며, 소강당은 1411평으로 500좌석 규모이다. 전시 및 연회장은 708평 규모다. 문화원과 문화예술회관 및 이 두 기관 사이에 자리잡은 한국방송국을 포함한 이들 부지와 배후의 달동문화공원을 포함하면 하나의 큰 문화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이 위치는 최초의 울산도시계획에서 중심업무 및 상업지역에 속하고 있어서 초기 도시계획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시설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만약 울산이라는 도시공간의 질서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번영로를 사이에 둔 문화원과 문화예술회관 반대편 부지에도 이에 상응하는 시설이 입지했을텐데 하고 생각해 본다. 예를 들면 울산 시청사나 남구청사가 이곳에 왔더라면 어땠을까.

울산문화와 관련된 또 다른 공공시설로는 시립도서관이 있다. 광역시 승격 후에는 중구도서관으로 바뀌었고, 현재 건립이 추진 중인 시립미술관 공사와 관련해 철거와 보존문제로 의견이 분분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관아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법원지원·등기소 등이 있던 곳이다. 부지는 802평인데 건축규모는 본관이 건평 170평, 연건평 510평의 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별관은 건평 60평, 연건평 90평의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 전물이다. 1983년 1월6일 착공해서 1984년 5월31일에 준공되었다. 예산은 시비 1억 8880만원이 들었다.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시민걷기대회, 예술작품 전시회 등을 열었는데, 당시 이렇게 모은 성금이 8100여만 원이나 되었다.

▲ 한삼건 울산대 디자인·건축융합대학장

또 하나 소개할 곳은 울산동헌이다. 조선 세종19년(1437) 지금의 병영성에서 밀려나온 울산군 관아가 자리잡았고, 이후 1895년까지는 울산도호부 동헌이, 이후에는 1979년까지 울산군청 및 울주군청이 자리잡고 있었다. 군청 이전 후 처음에는 부지를 민간에 불하하려는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차적으로 1981년 12월에 75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당초 군청 회의실로 쓰던 동헌 정청 반학헌을 비롯해서 내아 건물을 복원했고, 이어서 1982년부터 1984년 9월24일까지 7차에 걸쳐 모두 4억 612만원을 투입해서 오송정, 내삼문을 신축하고 관리사를 지었으며, 관내에 흩어져 있던 공덕비, 선정비, 불망비를 모아 비림을 조성했다. 현재 동헌은 울산시민의 사랑을 받는 공원 역할과 함께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울산 역사의 산증인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남문루인 가학루를 복원하기 위해 기존의 정문을 철거했다.
한삼건  울산대 디자인·건축융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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