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확한 공중의제 설정 도시 발전에 기여
2010년 이후 새 의제 찾지 못하는 울산
나아가야 할 방향 찾아내는 지도자 필요

▲ 정명숙 논설실장

울산시의 첫번째 기적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 지정에서 시작됐다. ‘잘 살아보세’라는 국가적 의제(議題 Agenda) 덕에 ‘산업수도 울산’이라는 기적을 일구었다. 지난해부터 주력산업의 성장정체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부자도시로 50여년을 버텨온 것은 국민적 신바람을 불러일으킨 국가 의제 덕택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울산시의 두번째 기적은 ‘생태도시 울산’이다. ‘잘 살기’에 급급해 시커먼 굴뚝연기를 자랑스럽게 여기다가 ‘공해도시’가 돼버린 울산은 ‘생태도시’라는 공중의제(public agenda) 아래 또 한번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태화강을 생태하천으로’라는 운동으로 시작된 생태도시라는 공중의제는 시민적 공감대와 동참을 이끌어냈다. 오로지 울산이라는 공동체의 힘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생태도시의 상징인 태화강은 곧 울산의 자긍심이 됐다. 정주의식도 높아졌다.

뿐만 아니다. 시민들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여놓은 광역시 승격과 고속철(KTX)울산역 유치, 국립대 유치 등도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일구어낸 성과이다. 정부로부터 얻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시민들의 폭발적인 열정과 동참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중의제화를 통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적확(的確)한 공중의제의 설정은 도시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울산은 공중의제를 갖고 있지 않다. 2010년 이후 새로운 의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울산시는 묵묵부답이다. 의제를 못 찾는 것인지,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로 인해 도시발전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느낌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2014년 취임한 김기현 울산시장의 슬로건은 ‘품격 있고 따뜻한 창조도시’이다. 4년 임기동안 문화·복지·경제를 두루 잘 하겠다는 일반적 행정 목표일 뿐 구체적 의제라 할 수는 없다. 취임 1주년 기자브리핑에서 밝힌 그의 말대로 취임 첫 해인 올 상반기까지는 ‘출어유곡 천우교목(出於幽谷 遷于喬木)’했다면 취임 2년차인 올 하반기부터는 구체적인 의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기대 밖이다.

김 시장은 지난 1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국가 예산 확보와 국내외 투자유치에 전력하고 있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 3대 주력산업의 성장정체에 직면한 현실에서 미래 먹거리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울산 밖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일반적 국가 예산 확보까지 모두 시장이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일인지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난 12일 울산시는 내년도 재정목표를 ‘시민 안전 및 창조도시 가속화, 행복한 자치’라고 밝혔다. 김 시장 취임 슬로건의 답습이다. 내년에도 시민들의 신바람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공중의제는 없다는 말이다. 시민들과 더불어 지역사회 문제를 찾아내고 이슈화해서 공중의제를 만드는 것은 지방자치의 중요한 덕목이자 단체장의 기본적 역할이다. 지방자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못지않게 단체장의 공동체 의식도 중요하다.

‘W이론’을 주창한 이면우 유니스트 석좌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기존 체제 속에서 주어진 목표를 주어진 자원으로 잘 꾸려가는 사람은 경영자이다. 반면에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드높은 목표를 설정한 다음 이를 허허벌판 속에서 여건을 조성하여 이루는 사람은 지도자”라고 했다. ‘공업도시’에서 ‘생태도시’를 거쳐 울산이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내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울산의 미래를 위한 제3의 기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명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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