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30여년을 보냈건만 올해처럼 안타까웠던 적은 없었다.지난해 발생한 의료사태로 인해 환자와 의사 사이 신뢰에 금이 가고, 따라서 전문 직업인으로서 긍지에 회의도 가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학창시절에 비교적 착실한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잘하였으나 약간은 용기가 없고 경쟁을 싫어하며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과 전문적 직업인으로서 환자를 돌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이 의과대학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의대생들은 6년간 의과대학 교육을 받아야 되고 이후 전공의 및 군의관(일부는 공중보건의) 생활을 마쳐야 하므로 30대 중반이 돼서야 전문의가 되어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 때 주위를 살펴보면 어릴 때 친구들은 안정된 사업체를 꾸리고 있거나 회사에서 중견이 되어 지위와 수입에서 상당히 앞서있음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매년 의사가 5%이상 늘어나고 있어 약 10년이 지나면 의사수가 50% 이상 증가하는 현실이고 보니 조갑증은 더하게 된다. 또한 진료비에 대한 현실적 보상감을바라는 의료소비자의 욕구확대와 비현실적 의료보험제도 아래서 직·간접적 의료행위제재로 의사들은 교과서적 치료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 갑갑하기만 하다.  그런데 지난해 초 의약분업을 시도하면서 추진목적이 약의 오남용을 막고 약의 리베이트나 받으며 환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음성적 거래를 근원적으로 차단한다는 명목하에 의사들이 불한당집단으로 매도됐으니 환자와 의사사이에 불신의 늪이 깊어가면서 진료현장에는 먹구름이 가득 드리워졌다. 1977년 의료보험이 실시된 후 국민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자연발생적 의료수가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정부는 비공식적인 약가마진을 인정해줌으로써 병·의원의 적자를 어느 정도 보충해준 것이 사실이다.  의약분업 실행전후 몇차례에 걸쳐 의료수가 인상이 있었으나 이는 의약품거래 상환제에 따른 약가인하분 보상과 과거에 억제된 물가 상승분을 감안하여 의료 원가의 약 90% 정도로 반영하여 충분히 현실화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금년 봄부터 의료보험 적립금이 바닥이 드러나자 의료보험제정 파탄의 원인으로 모든 비난의 화살이 의료계에 집중되어 의사에게 덮어 씌우기로 압박하고 있다.  의약분업이후 국민의 진료비 증가가 있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진료횟수 증가, 보험급여 범위 확대, 요양급여기간 연장과 인구의 노령화로 의료대상자 증가, 건강진료비 상승, 물가 인상 등 자연발생적 진료비 지출이 증가의 주된 요인이지 단순히 의사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국고수입과 보험료 수입이 1996년 이후 급여비에 비해 격감하면서 재정파탄이 이미 예고된 바 있었다. 그런데도 이 모든 현실과 잘못된 의료정책이 의상들의 진료비 허위, 부당청구와 과잉진료로서 발생하였다고 호도되고 있다.  더구나 진료내역통보에 의한 포상금 제도와 수진자 조회 등으로 파렴치한 사기범 취급을 받는데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의료법 개정한답시고 의사자격 정지 강화, 의료기관 과징금 대폭 확대 등 타직종에서 볼 수없는 제재를 가하는 의료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분홍빛 언덕 뒤에 벼랑 끝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의대 지망생이 아직도 많은 걸 보면희망이 있는 직종인 것 같으나 의료직이 3D업종이 된지는 벌써 오래된다. 일부 돈되는 진료만 하고 의료구조가 왜곡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그래도 참된 의사들은 길고 어려웠던 의사준비기간을 보상 받고자 갈망하지도 않으며 돈만 추구하는 노예도아니다. 단지 안정된 의료환경에서 사회에 봉사한다는 작은 보람에 인생을 걸고 있는극히 보통사람들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믿음과 신뢰는 최첨단기계보다도 정확한 진단을 기대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어떤 약이나 주사보다 확실한 효과가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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