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반구대 암각화 보존의 숙제

▲ 암반에 규조류(백색층)가 수평으로 발생된 모습.

언양과 경주 사이 도로에서 들어와 구불거리는 포장도로를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은 요새처럼 펼쳐지는 풍경이 있다. 시 한수가 절로 읊어졌을 법한 대곡천과 기암절벽들, 그 위에 웅장하게 자리한 소나무들. 그곳에서 다소곳이 나 있는 흙길을 따라 몇 분 걷다보면 대곡천 건너편에 250여 점이 넘는 조각들이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85. 이곳에 바로 국보 제 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 대곡천을 따라 흘러온 각종 부유물들이 조각면에 부착된 모습.

호랑이, 사슴, 족제비 등의 육지동물을 비롯하여 고래, 상어, 거북이 등의 해양동물, 각종 사냥 장면 등 선사시대의 모습 그대로 조각되어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2010년 1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단계로써 잠정목록에 반영되는 등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암각화 앞에 서 있노라면 당시의 모습들이 영상처럼 보이는 듯하다. 여러 종류의 사슴이며 멧돼지, 호랑이 등 세부적인 특징을 그대로 묘사하였고, 고래 꼬리의 유려하게 구부러진 모습들에 이르기까지 서툰 흔적이 조금도 없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965년 사연댐 건설 이후
침수와 노출 반복으로 훼손 가속화
암각화의 물리적·구조적 상태와
표면의 변화 등 모니터링 결과 축적
세계문화유산 자격기준에 부합하는
세척·보강·보존처리 방안 병행돼야

그러나 1965년 사연댐 건립과 함께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암반은 연중 4~6개월 정도 대곡천에 침수되고 있는데, 침수와 건조의 반복은 암석의 물성약화, 오염물 발생, 조각 마모 등의 훼손을 야기시킬 수 있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보존방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노력과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글쓴이가 반구대 암각화를 조사한 것이 2003년 부터였으니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십여 년의 시간동안 주변 흙길은 포장도로가 되었고, 주변 나무들도 많이 자랐다. 암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고, 1500여 편의 논문과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그렇게 많은 것이 달라지는 동안 반구대 암각화는 어떠했을까?

반구대 암각화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보존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보존상태가 진단되었는데, 암반의 균열, 박리박락과 같은 물리적 훼손, 초본류 서식, 오염물 부착 등의 생물피해, 암석의 물성 약화 등이 우려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야외에 오랫동안 노출된 석조문화재는 동결융해, 강우와 같은 자연환경을 비롯해 사람들에 의한 인위적 훼손(낙서, 도굴, 파손)등이 발생되게 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천이 가로막고 있어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대신, 1965년 사연댐 건설 이후 대곡천으로의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훼손이 더욱 가중되었을 것으로 인식되었다.

1971년 동국대학교 조사팀(문명대 교수)에 의해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 조사된 이후 암각화 훼손에 대한 우려로 수차례에 걸쳐 보존상태 조사, 보존방안 연구 등이 진행되어 왔다. 2000년에는 울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사진자료와 탁본 등의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3년에는 울산광역시 주관으로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연구’가 진행되었고, 보존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암석의 물성, 암석학적 풍화, 사연댐 준공 이후 발생된 훼손현상 진단 등이 이루어졌다. 2010년에도 울산광역시 주관으로 ‘반구대 암각화 암면 보존방안 학술연구’가 진행되어 석재의 성분분석, 암반 사면의 구조안정성 분석, 비파괴 조사 등이 이루어지는 등 보존상태 파악을 위해 과학적 조사들이 진행되어 왔다. 또 정확한 형상을 기록하기 위해 2004년(국립문화재연구소), 2008년(울산광역시), 2014년(문화재청)에는 3D 스캐닝을 통한 정밀실측이 이루어져 조각의 마모정도나 형태 변화에 대한 추적을 하고자 하였다.

그동안 이루어진 조사를 통해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몇몇 도상들도 새롭게 발견되어 암반 구석구석이 선사인들의 자유로운 화면(畵面)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반구대 암각화의 도상은 형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250여 점을 비롯해 조각 흔적인 각흔까지 포함하면 300여 점이 넘는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향후 이루어질 조사들에서 또 새로운 그림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접하지 못한 도상들이 더 있을 지도 모르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숙제를 지닌 암각화의 보존상태는 어떠할까? 그동안 암각화는 ‘훼손이 심화되었다. 조각이 예전에 비해 안 보인다. 암석이 부스러진다’ 등의 구술증언과 우려들이 있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루어진 조사결과와 사진들을 비교해 보면 일부 암편이 탈락되는 등 달라진 점이 발견된다. 물론 워낙 넓은 면적에 걸쳐 조성되어 있고, 암반의 상태 또한 고르지 않아 작은 암편들의 탈락이 불규칙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암편들이 탈락 되고 있는 지에 대해 주기적으로 살펴보고 모니터링하여 훼손 여부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 유형은 암편의 탈락 외에도 각종 오염물이다. 대곡천의 유수를 따라 흘러오는 나뭇잎, 곤충 사체, 진흙과 같은 각종 부유물들이 암반에 퇴적되면서 암반 표면에는 이러한 오염물들이 가로로 둘러지게 되었다. 암반에 부착된 침적물은 이끼나 지의류 서식 등 생물피해가 활성화 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하고, 조각면을 덮어 조각미를 퇴색시키기도 한다. 또 표면에서는 규조류, 각종 균류 등이 나타나는데,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은 일부 균주들은 유기산을 생성한다고 알려져 있어 암석의 풍화나 변색이 발생될 수 있다. 특히, 진흙은 암반 표면에 부착될 때 유수의 형태나 속도에 따라 침적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많은 양의 진흙층이 침적된 표면에는 조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여 있기도 하며, 음각의 조각 사이에 침적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는 관람위치에서 볼 때 형상 파악을 저해하여 조각미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오염물은 2014년에도 세척되었고, 과거에도 수차례 세척을 통해 제거되어 왔지만, 침수와 건조가 반복되는 환경이라면 부유물의 부착은 계속 진행 중인 셈이다. 그러므로 오염물 부착현황을 매년 살피고, 부착정도에 따라 세척을 실시하는 등 보존방안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암석의 물성도 상당히 저하되었을 것이라고 우려되어 왔으나, 과거에는 물성조사가 이루어진 바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암반 상태와 물성 저하 정도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2000년대 초반~최근까지의 초음파 탐사나 휴대용 X선 형광분석(P-XRF)에서도 암석의 물성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신선한 암석에 비해 풍화된 암석이기 때문에 물성의 저하도 주기적으로 체크하여 변화를 살펴야 한다.

▲ 신은정 엔가드 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지금 반구대 암각화는 망원경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대곡천 물소리를 배경으로 느껴지는 암반의 웅장함과 섬세한 조각들은 ‘이래서 세계문화유산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하게 될지 모른다.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후손들에게 암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반구대 암각화의 물리적, 구조적 상태와 표면의 변화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결과들을 축적해야 하겠다. 이러한 결과 비교를 토대로 반구대 암각화가 얼마나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지 잘 살피고, 세척이나 암반 하부의 공동부 보강과 같은 적절한 보존처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되기 위해 보존문제에 있어서도 세계문화유산의 자격 기준에 함께 부합되도록 말이다.

더불어 지금처럼 망원경 너머가 아니라 조금 더 가까이에서 건강한 반구대 암각화를 보게 되기를 기원한다.

신은정 엔가드 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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