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의 경지 접어든 지역 노동계
분규 먹구름 가득해 시민들 우려
노사가 혜안 통해 상생의 길 찾길

▲ 이재명 사회문화팀 팀장

사람이 나이가 들듯이 도시나 기업도 나이가 든다. 사람은 젊었을 때 패기가 충천해 앞뒤를 잘 가리지 않으며, 사고를 자주 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30~40대가 되면 사리분별력이 높아지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게 되며 가장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게 된다. 50대가 되면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에 이르러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60대 이후가 되면 생산력이 떨어지면서 쇠퇴하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창업을 갓 하고 난 뒤에는 패기에 차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덤벼들다가 좌충우돌 실패를 거듭하면서 차차 안정된 길로 접어들게 된다.

얼마 전 한국은행 울산본부가 ‘울산지역 노동력의 연령 구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울산지역에서는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근로자의 고령화 정도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지역 전체 제조업종 근로자 가운데 50대 이상이 28%를 차지했으며, 특히 자동차와 조선은 50대 이상 비중이 30%에 이르렀다.

또 17년 전인 1998년에는 울산지역 근로자 가운데 20~40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30~50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의 근로자들이 퇴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세월을 따라 현재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울산지역 대기업의 노령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은 대기업의 임금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아 퇴직자가 잘 발생하지 않는데다 강력한 노조가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대로 간다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근로자들은 10년 후 대부분이 40~50대가 된다. 울산이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점과는 대조적이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이 한창 젊었을 때인 1990년대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춘투(春鬪)로 이름붙여졌던 임단협은 어김없이 분규로 이어졌고, 벚꽃 흐드러진 거리로 몰려 나온 노동자들의 함성과 최루탄 가스가 뒤섞여 난장판이 되곤 했다. 그렇게 청년기를 넘긴 기업과 노조는 안정을 되찾으면서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의 조선기업으로,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톱5 기업으로 올라섰다. 생산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현대중공업은 매년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요즘 울산에 분규의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대형 사업장들이 잇따라 파업을 외치면서 일전 불사의 태세를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파업에 들어가면 인근 상가는 쑥대밭이 된다. 거기다 한 곳만 바라보며 기업을 이끌어 온 협력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사람이 40대가 되면 가장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고 50대가 되면 세상을 꾀뚫는 혜안(慧眼)을 갖게 된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47세다. 높은 생산성에 혜안을 갖춘 근로자들이 이들 회사에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세월이 좀 더 지나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이 60대를 향해 가게 되면 회사는 경쟁력에 큰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근로자들의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임금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젊은 층이 없어 기술의 전수에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젊은 피가 흐르지 않으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늙어가게 된다.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쪼록 노와 사가 40·50대의 혜안으로 상생(相生)의 길을 찾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재명 사회문화팀 팀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