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정원 감축 요구 기재부 월권
시민사회 동의 없는 정원 감축 불가
균형발전 차원서 예산 심의·편성해야

▲ 추성태 정치경제팀장

정부부처 가운데 힘과 권한이 가장 센 곳은 기획재정부로 국가발전전략, 경제·재정정책 총괄, 예산편성·집행, 공공기관 관리 등 국가경제의 핵심업무를 관장한다. 이중 제일 큰 권한이자 책무는 ‘예산편성권’이다. 기재부는 입법, 사법, 행정부의 예산편성은 물론 각 부처에서 올라온 예산안 심의, 지자체의 국가사업과 보조사업 등 모든 예산을 심의·조정·편성·집행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돈줄을 쥐고 있다보니 기재부 공무원들은 타부처 또는 지자체로부터 시샘을 받거나 ‘갑질’ 지적을 받기도 한다. 지금처럼 예산편성 시즌에는 예산실 관계자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국가예산은 각 부처와 지자체의 요구를 합리적인 심사를 거쳐 나눠주도록 국가와 국민이 위임한 것인데 어떤 때는 기재부 자신들이 만들어주는 것처럼, 어떤 때는 ‘특정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산권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한정된 국가예산을 아껴가면서 모든 기관에 적정하게 편성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예산편성은 ‘합리적 명분’이 담보돼야 ‘갑질’이라는 원성을 사지 않는다.

3년여 진통끝에 올해 4대 과기원으로 전환된 울산의 UNIST 내년 예산안 편성을 두고 기재부가 ‘갑질’ 눈총을 받고 있다. 요지는 대학원 중심의 과기원으로 전환된 만큼 학부정원을 ‘대폭’ 감축하라는 요구를 UNIST가 “과하다”며 수용하지 않자 주무부처에서 올라온 예산을 21%나 칼질한 것이다. 미래부가 835억원을 편성했는데 177억원(21%)을 삭감한 658억원만 국회심의를 요청했다. 반면 대전·대구·광주 등 3개 과기원은 미래부에서 올라온 예산에서 오히려 증액했다. 그런데 내막을 더 들여다보면 기재부의 이번 삭감조치는 명분도 합리성도 없어 보인다.

거슬러 올라보면 UNIST의 정원문제는 수년간 국회논의 과정에서 타지역(부산, 경남)의 과기원 신설요구, 과학영재 수급의 문제, 타 과기원과의 입학정원 차이 등 여러 논의와 주장으로 난항을 겪다가 올해 초 4개 과기원 총장들과 미래부 차관이 현 750명(학부생 기준)에서 400명선(이후 360명으로 축소)으로 줄이는데 합의해 이를 국회 상임위에 보고, 여야의원 합의로 법안이 통과됐다. 때문에 기재부의 정원감축 압박은 여야 국회의원과 4개 과기원 합의를 모두 뒤집는 월권행위다. 이런 배경속에서 학교예산을 177억이나 칼질한 것은 누가봐도 ‘갑질’로 보인다. 어느 학교가 살림규모를 21%나 줄이고 정상적인 학교운영을 할수 있겠는가.

기재부가 간과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UNIST는 국립대학이지만 울산시와 울주군이 시민들의 세금으로 각각 1500억원과 500억원의 발전기금을 내는 ‘반 시립대학’이라는 것이다. 울산시민들은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 4년제 종합대학이 한곳밖에 없자 십수년에 걸쳐 국립대 유치운동을 벌여 UNIST를 품에 안게 됐다. 그 대가로 다른 국립대학과 달리 울산은 천문학적인 기금을 정부대신 내야 했다. 때문에 UNIST의 정원문제는 학교만의 일이 아닌 시민사회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내년은 물론 후내년에도 기재부 뜻대로 강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가 세운 대학에 국세가 아닌 시세로 2000억원이나 내는데 울산시민에게 이 정도의 권리는 있다. 기재부는 지방이나 지자체의 예산요구를 칼질(삭감)부터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방의 절박하고 합리적인 요구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애정을 갖고 심의·편성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합리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choo@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