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대표하는 명사 박상진·최현배 선생
확인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성공 가능성
추석 귀향길 아이들에 고향얘기 들려줄터

▲ 김영조 위동해운 여객팀장 재경울산향우회 운영위원

출근길 차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로 시작하는 광고 카피를 듣고 문득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고향을 떠나서 살아가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명절의 의미는 고향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들과는 분명 남다를 것이다. 명절의 풍속도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한 듯하다. 내 어린 시절 명절의 즐거움은 평소와는 다른 음식을 마음껏 먹고 두둑한 용돈을 받아서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아닌 수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태화극장이나 천도극장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겨우 표를 샀다. 그리고 빽빽한 관람객 틈에서 홍콩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를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참으며 보았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얼마 전 영남알프스복합웰컴센터에서 국내 최초의 국제산악영화제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레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폐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초 예상 관람객 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 국제산악영화제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니 기쁘고도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으로 포함되지 못해 못내 아쉽기도 하다. 내년에는 캐나다 밴프와 이탈리아 트렌토에 이어 세계 3대 산악영화제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제1회 영화제 개최 준비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 때를 기약해야 할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역대 한국영화 관람객 순위 6위에 오른 1200만 관객 속의 한 사람이란 사실로 나름 아쉬움을 달랬다. 광복 70주년을 겨냥해 실존인물을 소재로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암살>이라는 영화의 시작은 1933년을 배경으로 역사의 뒷이야기를 탄탄한 구성과 화려한 총격액션으로 두 시간 이상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다른 삶의 선택을 했던 두 인물이 유난히도 나의 눈길을 끌었는데 실존인물인 김원봉과 가공의 인물인 염석진이었다.

밀양 출신인 김원봉은 만주에서 결성한 무정부주의 성향의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단장을 맡았고 요인 암살과 국내외 일제 관공서 파괴 등 급진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해방 후 월북하여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이후 북한 내각에서 고위직을 지내다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역시 그를 독립운동가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 버림받은 비운의 인물이다.

한편 가공의 인물인 염석진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밀정 노릇을 한 염동진과 친일 경찰 노덕술을 융합해서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한다. 울산 장생포 출신인 노덕술은 일제 강점기 당시 악질 친일 경찰이었으나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부터 친일파 경찰에서 수도경찰청 간부로 신분을 바꾼 삶을 시작한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바가 있었지만 반민특위 해체로 풀려나 경찰직 복귀 이후에도 대한민국 경찰직에서 고위간부로 호사를 누리고 정계에도 입문하려 했으나 뜻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과 등진 삶을 살았다는 후문이다.

한편의 영화를 계기로 역사적으로 저평가 되었다는 약산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그의 고향 밀양에선 그를 잊지 말자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노덕술은 작년에 하마터면 ‘울산이 낳은 인물’에 등재 될 뻔 했다니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울산을 대표할 만한 명사를 문득 떠 올려 보니 단연 광복군 총사령으로서 항일사에 길이 남을 청산리대첩 등을 일궈낸 고헌 박상진 열사와 명불허전 불세출의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떠오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추석에는 세 모녀를 데리고 내 고향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알려주는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마음은 벌써 오곡백과 풍성한 고향산천을 누비듯 요동치고 있다.

김영조 위동해운 여객팀장 재경울산향우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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