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초창기 간부숙소 부지
건설업체가 근린생활시설로 건설 중
정주영 회장의 흔적 일부는 보존해야

▲ 박철종 사회문화팀 부장

울산시 북구 염포동 20 심청골 일대는 이른바 ‘현대가(現代家)’의 모태다. 울산문화원이 펴낸 <울산지명사>에는 심청골은 물이 맑고 좋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에는 자연 알칼리수에 유황이 함유된 균형잡힌 미네랄 지하광천수가 솟아나는 약수터가 있다. 수질이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이 물을 받아 간다. 이 약수는 현대자동차 초창기에 간부숙소에 거주했던 입주민들이 생활용수로 이용했다.

이 부지의 지목은 1927년 2월 논이었으나 1974년 7월 대지로 바뀌었다. 1968년 9월 현대자동차가 여러 지주들로부터 땅을 사들인 이후다.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차를 세울 당시 머물던 간부숙소 부지가 남아 있다. 정 전 회장은 이곳 숙소에 자주 들러 부지조성을 하는 직원들을 수시로 격려했다. 그의 부인도 국수를 직접 말아주면서 간부들과 현장근로자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 재임시절 비업무용 토지로 판정받아 일반에 매각됐다. 정 전 회장이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한 뒤 현대그룹은 YS정권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면서 부터다.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김영삼·김대중 후보에 이어 3위로 낙선했기 때문이다.

이 부지에는 현대골든라이트(주)라는 건설업체가 근린생활시설 등을 건설 중이다. 도시관리계획시설 제1종 지구단위계획(근린생활시설, 의료시설, 종교시설 등)을 수립해 북구청 승인을 거쳐 2011년 3월3일 결정고시를 받았다. 또 2011년 11월8일과 9일 건축허가, 2015년 5월26일 시계획시설(도로·공공공지)사업 실시계획(변경) 인가를 받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바닷가 근처 논밭만 있던 진흙땅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정 전 회장. 그는 연간 2만대 생산설비를 갖춘 현대차 울산공장 부지를 조성할 때부터 준공할 때까지 이곳에 수시로 들렀다. 이 간부숙소는 1970년대 자동차 생산 전초기지가 된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에 다름 없다. 오늘날의 현대자동차를 일으켜 수출과 경제성장을 견인한 터전이기도 하다. 이 부지에 근린생활시설 건설 등이 추진되면서 간부숙소는 대부분 철거된 상태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이 머물던 간부숙소와 똑같은 규모와 구조의 건물 1동이 남아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이 업체가 근린생활시설 등을 추진하면서도 부지의 가치와 희소성을 감안해 전체를 철거하지 않고 한 채를 남겨두었다. 이 업체는 또 현대아산, 현대차그룹 등에 정 전 회장의 추모공간 조성의 필요성을 개진하는 의견서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조계종 큰스님들이 남북 화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이곳에서 가졌다. 정 전 회장이 소떼 방북 등을 통해 남북교류 발판을 마련한 곳이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후문이다.

올해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1915년 11월25일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그는 1930년 송전소학교 졸업이 정규학력의 전부이다. 막노동으로 출발해 한국 최대의 재벌을 일궈낸 정 전 회장은 그의 사후에도 울산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울산과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현대가’의 모태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가의 모태일뿐 아니라 한국 한국 경제발전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보존대책을 강구하면 어떨까 싶다. 국립산업기술박물관 건립 못지않은 가치를 지니지 않았을까.

박철종 사회문화팀 부장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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