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집값에 밀려 찾은 산 26번지
어릴 적 인정 넘치던 산동네의 일상
날마다 새로운 풍경으로 다시 찾아와
중심-주변부 선 그었던 마음 무너져

▲ 설성제 수필가

떠나고자 마음먹으니 일사천리였다. 도시의 중심부를 맴돌던 시간이 수십 년.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뿌리 박혀 영영 살리라 여겼다.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 가까운 일터, 관공서, 대형마트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편리함이었다. 그런데 치솟는 집값과 생활비를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중심부에서 방 한 칸 오롯이 내 것으로 될 날을 꿈꾸었던 것이 자꾸만 멀어져갔다. 발버둥치다 결국 밀려난 곳이 산 26번지, 외진 산 아래였다.

사춘기 시절, 할머니는 내가 방학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부산으로 갔다. 숙모가 없는 산동네 작은집에서 방학 내내 머무는 일이 힘든 방학과제물인양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다 이른 새벽이면 산동네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새벽에 청소부의 요령소리가 지나가면 곧이어 골목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머릿수건을 뒤집어쓰고 종종걸음 치는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기침소리도 쿨럭쿨럭 뒤따라갔다.

나는 눈을 부비며 일어나 유리조각이 박힌 담장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한 사람 정도에게만 곁을 내주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을 하릴없이 거닐기도 했다.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신발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화르르화르르 하늘을 덮어갔다. 이른 새벽에 산동네에서 내려간 사람들이 도시의 중심부를 깨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장 연기가 도시를 데워놓으면 해는 그제야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곤 했으니.

어스름이 끼면 사람들은 찬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시 올라왔다. 백열등 불빛이 새는 나무문 사이로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웃음소리, 때론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고함도 들려왔다. 그런 산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나에게는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 <교동> 25F oil on canvas. 서양화가 김호태 作

울산시 중구 교동, 어릴 때 살았던 곳이다. 지난해 가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간 그곳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산 26번지는 낯설지 않았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는 너댓 평 남짓한 가게들이 줄지어 섰다. 한아름 식품가게, 리치 미용실, 1등 로또 판매집, 제일 세탁소, 비틀즈 영어학원, 등등. 최고로 모시겠다고 말하는 듯한 간판들이 정겹고 장삿집 주인들도 언제나 친절했다.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외상도 서슴없었고 덤이 없는 곳이 없었다. 나는 사춘기 시절에 보았던, 정말 살아서 꿈틀거리는 산동네의 모습을 다시 만난 듯했다.

산 26번지 언덕길에서 사람들을 스칠 때 “살고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아가씨의 가벼운 발걸음에서, 또각또각 굽 소리를 내며 총총걸음 치는 아주머니에게서, 통근버스를 놓칠세라 달려가는 작업복 입은 노동자에게서 나오는 활기가 디지털화 된 도심의 움직임과는 달라보였다.

이 길에서 유일하게 느린 것이 있다. 네 발 달린 차다. 아무리 평지를 질주하던 성격 급한 나라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커브까지 있는 언덕길이라 행여 올라가는 차와 내려오는 차가 부딪칠까봐 언제나 조심하며 다녀야했다. 오랜 시간 양보와 배려로 물든 길, 황소처럼 버티고 설 수 없는 길이다. 이런 진풍경을 마주하는 사이에 나는 어떻게든 붙박이려 애를 썼던 도심을 점점 놓아갔다.

산 26번지에 든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새로 이사 온 사람으로서 난데없는 시낭송 부탁을 받았다. 넉넉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시낭송이 열린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손바닥만한 무대와 몇 십 석의 객석이 있는 동네회관에서 관람객보다 출연진이 더 많은 낭송회였다.

그동안 다녀본 출판기념회, 시낭송회가 떠올랐다. 악기연주, 노래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까지 합세한 화려한 퍼레이드 뿐 아니라 번쩍이는 의상에 프로솜씨를 갖춘 낭송가들의 목소리가 대공연장을 울려 퍼졌다. 관객들은 귀를 기울여 시를 음미하고 꽃다발을 증정하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지 않았던가.

산동네에서 열린 시낭송회는 오롯이 시를 위한 시로 타올랐다. 무대는 흩어진 낙엽과 작은 벤치 하나가 전부였다. 자작시를 발표하는 사람, 동시를 낭송하는 사람, 우리말로 어눌하게 낭송하는 다문화가정의 어느 부인. 어떤 이는 무대 위 낙엽길을 거닐며 분위기를 잡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 그 뿐이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벤치에 앉아 낭송을 했다. 즉석으로 무대 위에 뛰어올라 자신의 애송시를 읊조린 후 얼굴이 빨개져서 후다닥 내려가는 이도 있었다. 소박하고 가식 없는 행사에 즐거움과 행복이 만연했다.

어설픈 나도 낭송이 끝나자 꽃다발 하나를 받았다. 장미, 국화, 수국을 둘러싼 안개꽃이 자욱한 꽃다발이었다. 늘 주변부만 서성이며 한 번도 중심에 서보지 못한 안개꽃.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꽃다발을 풀었다. 안개꽃을 한가운데 넣고 다른 꽃들을 가장자리로 둘러 세웠다. 산 26번지 사람들 같은 안개꽃이 힘껏 물을 빨아들여 꽃송이를 부풀리자 꽃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중심부와 주변부라고 선을 그었던 마음이 가차없이 무너졌다.

설성제 수필가

■ 필자 약력
·수필가
·옹기종기도서관·약숫골도서관 강의
·수필집 <바람의 발자국>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