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반구대 암각화는 소망과 기원의 제단

▲ 지난 1971년 12월 대곡리암각화 조사장면. 사진 속 검은 점퍼 인물이 김정배 위원장이다.

대곡리 암각화는 국보 제285호로 우리나라 선사미술의 보고이자 백미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암각조각의 걸작이다.

1971년 필자는 문명대, 이융조 교수와 함께 이 유적을 발견한 이후 거의 45년 동안 대곡리 암각화에 대해서 논고를 쓰지 않았다. 해외유적 조사에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이 유적에 대해서는 훌륭한 학자들이 좋은 논고를 쓰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였고, 유적보존에 있어서도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시기에 문화재위원장을 맡으면서 다시 한 번 속칭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문제가 온 국민의 관심사로 대두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필자는 큰 충격과 서운함 속에 대곡리 암각화의 전반적인 보존 문제를 재검하는 기회를 맞이하였고, 대곡리 암각화에 대한 그간의 학문적 성과도 일별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처음 보고서에선 약 200여점 발표
이후 새로운 판별 기법 발견으로
270·296·307점으로 보는 의견 나와
격차 최소한도로 줄이는 연구 필요
암각화 제작연대·수렵대상 동물 등
신성불가침인양 고수하는 연구풍토
유연한 자세로 연구 논의 활발해져야

누구나 문화재위원회의 책임을 맡으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도 사업의 타당성 여부는 그 뒤에 판단해서 결정할 사안이며, 무조건 찬성이나 반대를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제는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 있어서, 소정의 절차를 거친 연후에야 합의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이에 많은 인내심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실험을 시도하고 문제점을 보완하였다 하더라도 실제로 보존정책을 시행하려면 그동안 시도했던 기왕의 방안을 다시 한 번 점검해서 혹여 새로운 안이 그동안 점검하였던 과거의 안보다 타당하고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닌지의 여부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사실 이 암각화를 발견한 세 사람보다도 대곡리 암각화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유적의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울산 시민들이다. 그리고 더 넓게는 이 나라의 국민들 모두 대곡리 암각화가 잘 보존되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화재로 각인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 대곡리 암각화에 그려진 바다동물과 육지동물의 생동감 넘치는 조각 기법은 가히 천상의 영감을 재현한 것처럼 특출한 솜씨를 뽐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는 이 암각화가 훌륭한 문화재로 잘 보존 보호되어서 자자손손 국보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지속되길 갈망할 뿐이다.

금년 들어 필자가 반구대 암각화에 다시 주목하면서 45년 만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던 바, 가장 먼저 느끼는 점은 암각화의 개체수가 연구자에 따라 각기 다르게 집계되어 서로 큰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자료가 나타나고 연구자들의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등장하면서 대곡리 암각화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상이한 해석과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도 학계가 바라는 요망사항이므로 이 모든 사실을 딛고 한 단계 도약하는 학문성과를 도출하면 바로 그러한 연구결과가 학계에 공헌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암각화의 전체 개체수 설정에 있어 논자에 따라 너무 커다란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점에서 각종 동물들의 분류체계나 전체 비율상의 큰 차이가 비롯되므로 이를 토대로 분류, 해석한 결과물이 자칫 허공에 날릴 수 있다는 염려가 내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암각화의 최대의 자랑거리이자 선사미술의 핵심요소를 갖추고 있는 대곡리 암각화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논의를 거쳐 전체 개체수가 밝혀져야 한다. 고생 끝에 나온 보고서에는 약 200여 점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이후 연구자들의 노고와 폴리에틸렌을 활용한 새로운 기법으로 암각화를 판별하여 개체수가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체수를 296점으로 보는 견해가 나오고, 270점이라는 의견이 나타나는가 하면 307점으로 보려는 설도 있어 국보의 가치를 격하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문제는 관계당국이 주가 되어 관련 전문 연구진과 논의를 하면 개체수의 격차를 최소한도로 줄일 수가 있다. 적어도 중지가 모아진 수를 토대로 연구를 할 때에야 보다 합리적인 연구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대곡리 암각화를 연구하는 일련의 경향을 살펴보면 다양한 견해 속에서도 두 가지 논점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실 자체마저도 융통성 없이 신성불가침인양 고수하는 연구풍토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는 대곡리 암각화의 제작 연대가 신석기시대인가 청동기시대인가 하는 논점이다. 소위 시대구분이나 시대설정은 축적된 연구를 토대로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현장의 책임자나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은 조급히 시대를 설정하려는 유혹에 쉽게 동화되는 것 같다. 속칭 반구대 암각화에는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를 알리는 아무런 확증이 없고 가느다란 실마리조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연구를 진행하는 목적을 한층 분명히 하기 위해 자기의 소신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시대를 설정하고 여기에 자료들을 대입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대설정에 온 힘을 쏟아 붓고 있다.

대곡리 암각화와 해안선 관계를 연결지어 고래그림의 난제를 풀기 위해 자연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좋은 연구방향임에 틀림없다. 대곡리 암각화 유적 부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사실을 지질학의 도움으로 확인하는 연구는 진일보한 업적이다. 따라서 기원전 6000~5000년(B.P) 전이 바닷물이 들어온 최상기이고 4000년(B.P) 전에 바닷물이 나갔다가 3000년(B.P)에 바닷물이 들어와 현재의 수위와 비슷하게 되었다고 보면서 이때 해안선이 울산만에서 13.6km 상류가 되는 굴화리에까지 닿았다고 보고 있다. 이 사실은 대곡리 암각화 주변의 자연환경을 복원해서 유적을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이 대곡리 암각화의 연대를 설정하는 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흔히 해안 유적에서 관계되는 유물들이 출토되어 대곡리 암각화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에 사슴머리와 앞발, 몸통 일부가 선각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 바 있다. 또 울산의 황성동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고래의 견갑골에 골촉이 박힌 유물이 나온 바 있다. 이 사실을 대곡리 암각화의 고래잡이와 연계시키면서 신석기시대설을 고려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소나무로 만든 배편이 출토되었던 바 이 점을 신석기시대 어로 활동과 연계시켜 대곡리 암각화의 시대를 설정하는 데 참고를 하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유적들 모두가 귀한 자료를 지니고 있고 출토된 유물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뜻깊은 의미가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고 또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적의 일반론적 성격을 규명함에 있어서는 세밀한 자료구성과 치밀한 논거가 동원되어야만 그 결과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유적, 유물이 신석기시대에 속한다 하여도 이 사실에 바탕하여 대곡리 암각화의 연대를 신석기시대로 못 박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판단이다.

▲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

두 번째 문제는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모두를 신석기시대의 수렵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고래, 호랑이, 사슴 등의 동물 전부를 수렵과 어로의 대상으로 보아 모두 진행형으로 해석하고 있다. 위의 동물을 포함한 암각화상의 모든 동물들은 당시 주민들이 두려워하면서 갖고 싶어하던 것들이며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하는 소유욕의 대상들이었다. 암각화 밑에는 돌로 된 넓은 공간이 있다. 공룡의 흔적이 있는 이 공간은 주민들이 모여 제의를 하는 곳이며, 자신들의 소망을 피력하는 화합과 희망의 성소이다. 이 암각화가 양식채집 단계의 조각인가 양식생산 단계의 조각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암각화 전체의 그림을 펼쳐놓고 관조하면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에게 호랑이가 사냥의 대상이었다는 견해는 더 많은 상념을 필요로 한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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